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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반대만 하는 野보다 낫다"…물가 아우성에도 與 '철옹성 지지' [日 참의원 선거 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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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일 일본 참의원 선거현장 르포

"미·일 동맹, 어느 당이 지키겠습니까? 일본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정당은 자민당뿐입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의 찬조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5일 저녁 7시 일본 도쿄(東京) 가마타(蒲田)역 앞 광장, 스가 전 총리가 10일 참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후보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쿠이나 후보는 1980년대 아이돌 그룹 '오냥코클럽'의 멤버 출신 사업가, '모든 사람이 일하기 쉬운 사회'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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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일본 도쿄 가마타역 앞에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쿠이나 아키코 후보 유세에서 찬조 연설을 하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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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스가 전 총리가 찬조 연설을 한다는 소식에 수백 명의 시민이 발길을 멈추고 연설을 들었지만, 대다수는 관심 없다는 듯 바쁘게 퇴근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50대 남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힘들어진 상태에서 재료비까지 많이 올라 하루하루 고통"이라며 "자민당이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려고 왔다"고 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유세 현장에서는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6일 저녁 도쿄 다마치(田町)역 광장에서 열린 마쓰오 아키히로(松尾明弘) 후보의 유세장에는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니시무라 지나미(西村智奈美) 간사장이 찬조 연설에 나섰다. "만나는 시민마다 월급은 적고 물가는 올라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다들 투표에 참여해 자민당을 심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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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저녁 일본 도쿄 다마치역 광장에서 입헌민주당 니시무라 지나미 간사장(왼쪽)이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마쓰오 아키히로(가운데) 후보의 거리 유세에 참여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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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선택은 자민당…여당 과반 유지 확실시



10일 투·개표가 진행되는 참의원 선거에선 총 248석 중 125석의 주인을 뽑는다. 미국의 상원에 해당하는 일본의 참의원은 6년 임기로, 3년마다 절반씩 인원을 교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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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지 언론들이 분석한 선거 종반 판세에 따르면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이 무난히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사히신문은 6일 이번 선거에서 자민·공명이 과반수(63석)를 넘어 70석 가까이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자민·공명은 이번 선거로 교체되지 않는 70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따라 참의원 과반을 훌쩍 넘는 14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교도통신·요미우리신문 등의 판세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일본 여당이 철옹성 같은 지지를 유지하는 건 '약한 야당'의 덕이 크다. 진보(리버럴) 세력을 대표하는 일본의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존에 갖고 있는 23석도 유지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5일 유세 현장에서 만난 60대 여성 유권자는 "정부가 못하는 게 많지만, 야당이 더 잘 할 거란 신뢰가 없어 자민당을 찍으려 한다. 반대만 하고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게 일본의 야당"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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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일본 도쿄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10일 열리는 참의원 선거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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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모으는 건 일본의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자민·공명,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개헌 세력'이 국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석(166석)을 차지할 수 있는가다. 개헌안 발의를 위해서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중의원은 개헌 세력이 이미 3분의 2를 넘는 상태다.

일본 내 보수화와 맞물려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유신회는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의석을 대폭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선거에서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일본에서는 아직 개헌안이 발의된 적이 없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 격화 등으로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거는 남의 일" 투표율 50%의 벽



선거의 최대 쟁점은 물가 상승 등 경제 문제다. 요미우리가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시하는 정책을 물었더니 '경기·고물가 대책'을 꼽은 이들이 3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연금 등 사회보장'이 20%, '외교 안보'가 14% 순이었다.

원유를 비롯한 자원 가격 상승에 올해 들어 의류, 식료품 등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일본 시민들은 수십 년 만에 물가 상승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입헌민주당 등 야당은 현재 10%인 소비세를 없애거나 인하해 물가 상승에 대응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자민당은 사회보장비 증가 등을 고려하면 감세는 있을 수 없다며 유류 보조금 지급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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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일본 도쿄 가마타역 앞에서 시민들이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자민당 이쿠이나 아키코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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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보수파 등이 적극 밀어붙이고 있는 개헌이나 방위비 증액 등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아사히 조사에서 개헌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6%로 '반대' 38%를 살짝 밑돌았다. 정부가 방위비를 5년 내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는데 대해서도 '찬성' 39%, '반대' 42%로 반대가 조금 많았다.

선거 자체에 대한 관심도 낮은 편이다. 일본의 참의원 선거 투표율은 1980년대엔 70%를 넘기도 했지만, 지난 2016년에는 54.70%, 2019년엔 48.80%로 낮아지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50%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일본에선 향후 3년간 대형 선거가 없다. 기시다 총리가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 경우,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안정된 권력 기반을 마련한 기시다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등 한국과의 관계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주목된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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