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조사관 출신 박상은씨,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발간
세월호 추모발길 |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8년간 세 번의 공식 재난조사 위원회가 구성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소수의 책임자가 처벌받았고, 참사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 일부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정작 대중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오히려 더 알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 출신 박상은 씨는 이달 5일 펴낸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서 세월호 참사를 조사한 특조위, 세월호 선체조사위(선조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조사가 실패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무실에서 만난 저자 박씨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한국 사회의 재난조사는 대부분 검찰이 주도해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재난조사기구는 수사기관과 다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세 개의 위원회는 모두 사법적 원인 규명에 몰두해 사람들이 재난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재난이 여러 행위자의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과 실수로 발생하기 때문에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거나 승객을 구조하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월호 재난조사기구들은 '책임자 처벌'이라는 사법적 조사에 매달려 정작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구조적 원인에는 소홀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법적 책임을 묻는 시도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개인 처벌을 위한 사법적 조사가 구조적 원인 규명의 문제의식을 압도하고, 정치적 진영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인과관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가 제기한 많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박상은 저자 |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개인 처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재난조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재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방식은 무엇인지' 등 주요한 질문을 놓쳐왔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런 재난조사기구들의 실패가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재난조사 연구가 척박했던 한국 사회의 시행착오였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사법적 조사를 넘어선 재난조사위원회는 사실상 세월호 참사로 처음 시작됐다"며 "세월호 재난조사 기구들은 길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재난조사위원회의 첫 시작이고 실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주체가 최선을 다했고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전문지식과 인식론 속에서 재난조사를 했다"며 "이를 토대로 앞으로 다른 방식의 재난조사위원회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책에서 저자는 9·11테러, 인도 보팔 참사,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등 해외 재난조사를 소개하고, 한국의 재난조사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재난조사 연구 방식을 제시한다.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
저자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을 바라보는 인식과 던지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저자는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선형적인 인과에 따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재난도 있다"며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예컨대 석면 피해와 관련해 석면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사회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와 기업에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피해 구제를 사회 차원에서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석면피해구제법이 만들어진 것이 하나의 예다.
저자는 "법적 책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사회가 재난을 함께 끌어안고, 예방과 그 이후 대처 방식을 고민하는 것들이 쌓이다 보면 재난 책임을 묻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사참위가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지난달 조사 활동을 종료한 이 시점, 저자는 2014년 참사 이후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사에 책임을 느꼈던 그 심정들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면 당시 제기했던 질문도 이어서 떠오를 것"이라며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묻지 못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chi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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