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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韓 "中 자극땐 반도체 공급망 휘청" 설득…美입장 바뀔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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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곽 드러난 칩4 협의체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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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미·일·대만 반도체 공급망협의체(칩4) 구성과 관련한 미국의 예비회동 제안에 대해 9월 초 회동을 하자고 미국에 역제안했다. 이를 두고 관가에서는 미·중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도 4개국이 협력해 산업 시너지 효과를 챙기는 실리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7일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칩4에 중국을 외면하고 가겠다는 메시지가 담기면 곤란하다"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산업 방어(protection)가 아니라 반도체 생산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모션(promotion)이라는 메시지를 중국에 제대로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도 "칩4는 정보와 기술 교류 내용을 담은 반도체 협의체로 산업 동맹을 논하자는 취지의 조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칩4 참여국이 중국의 역린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한국 정부가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참여국들이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언급해선 곤란하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이 같은 원칙에 공감대가 형성되면 △각국의 반도체지원법 우수 사례 공유 △상호 인력교류 확대 △기술협력 활성화 △공급망 협력 강화 등 4개 주제를 바탕으로 세부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게 한국의 구상이다. 4개 주제를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최근 칩4 참여국들 사이에서 잇달아 나온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세부 내용을 공유하자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미국은 지난달 반도체 기반시설에 520억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칩 과학법'을 하원에서 통과시켰고 한국은 이달 초 여당이 대기업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6%에서 20%까지 확대하는 반도체 산업경쟁력 강화 법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제도 변화로 인한 산업 지원 우수 사례를 참여국들이 공유해 입법 노하우를 서로 학습하자는 내용이 세부 주제로 잡혔다. 반도체 인력 상호교류 확대 부문에서는 비자 규제를 완화해 참여국 간 인적자원 이동을 활발히 하자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길 공산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칩4 참여국 간 역내 투자가 늘면 투자 당사자인 대기업뿐 아니라 1·2차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현지로 오가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예컨대 미국이 올해 신설한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E4) 등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H1B 비자를 통해 전 세계 신청자를 대상으로 전문직 취업비자를 발급하고 있지만 비자 한도가 연 8만여 개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첨단 반도체 부문에 대한 기술 협력과 공급망 협력 강화는 한국(메모리 반도체), 미국(설계), 일본(소재), 대만(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개별 국가가 갖고 있는 강점을 살려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취지가 담기게 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품·소재·장비 시장에서 중국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며 "중국을 배제하면 공급망 타격이 심해지기 때문에 칩4가 가동된다 해도 실익이 작다고 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을 자극하지 말고 예비회동을 갖자는 한국 측 의견에 대해 미국에서도 실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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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5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장쑤성 우시의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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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업계는 칩4 예비회동과 참여 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체에 중국은 최대 수출 시장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 수출액 1280억달러 가운데 중국으로의 수출은 502억달러로 약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통해 우회적으로 수출되는 물량을 포함하면 60%에 달한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만약 한국의 칩4 참여에 반발해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수입에 태클을 걸 경우 한국으로서는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이 흔들리는 셈이다.

여기에 중국은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주요 반도체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생산공장을 가동 중인데, 지난해 인텔의 낸드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다롄에도 공장이 한 곳 더 추가됐다. 이 밖에 삼성은 쑤저우에, 하이닉스는 충칭에 패키징(후공정) 공장을 두고 있다. 칩4가 가시화될 경우 현지 공장 가동에 있어서 중국 정부의 다양한 규제가 치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시안공장이 코로나19 방역 통제로 한 달 가까이 가동을 중단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는 기업에 대한 정부 입김이 매우 강하다.

칩4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우리 기업이 입게 될 손실도 크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생산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장비와 소재, 기술의 상당 부분은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환 기자 /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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