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55화. 단군 신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신의 지위를 버릴 만큼 소중한 소망은





오랜 옛날, 신들의 세계에 환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환웅은 하늘신 환인의 아들이었지만, 항상 하늘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죠. 어느 날 환웅은 땅을 내려다보았고, 많은 이가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없을까 생각했어요. 이를 알게 된 환인은 환웅에게 땅으로 내려가는 것을 허락했죠.

환웅이 신하들과 더불어 신성한 박달나무 옆에 내려오니 이를 신의 도시, 신시라고 부릅니다. 천왕이라 불린 환웅은 바람과 구름, 그리고 비를 다스리는 신하들을 이끌어 땅에 사는 이들의 농사를 도왔고, 질병과 형벌, 선악과 수명을 다루며 인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홍익인간(弘益人間·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함)이라는 말이 생겨났죠.

한편, 신시 근처에 어떤 곰과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환웅에게 사람이 되길 빌었고, 환웅은 신령한 쑥과 마늘을 주며, ‘이것을 먹고 백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떠나버렸지만, 곰은 끝까지 참았습니다. 오직 인간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짐승의 욕망을 참은 것이죠. 그렇게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고, 환웅과 맺어졌습니다. 그렇게 한 아이가 태어나니 그의 이름은 단군, 단군왕검이라 불리는 우리네 한민족의 시조입니다.

중앙일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행사하는 모습. 단군왕검이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10월 3일 개천절에 개천대제란 이름으로 제천의식이 열린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단군의 이야기, 단군 신화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하며 익숙한 신화입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 같은 책에서 소개된 이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다시 전하면서 우리를 ‘단군의 후예’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했죠. 단군이 정말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이전의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없고, 『삼국유사』에서 참고했다는 중국의 책도 찾을 수 없거든요. 게다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만 해도 그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위에서 소개한 웅녀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온 것이고, 『제왕운기』에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자기 손녀를 사람이 되도록 하여 박달나무의 신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습니다. 그 밖에도 단군이 박달나무 옆에서 스스로 태어났다거나 나무가 변하여 단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어느 쪽이건 단군이 신의 자손이거나 스스로 신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점은 이 이야기를 전한 우리네 조상들이 자주성을 갖고 살았음을 느끼게 합니다. 중국의 신하로 시작한 나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시작한 독립적인 왕조라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단군의 왕조를 계승했다고 선언한 조선에서는 사직단에 단군성전을 세우고 나라에서 단군에 대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단군에 대한 제사는 조선 시대에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에요.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강화 참성단)의 경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전해지는데요. 실제로는 단군에게 제사를 지낸 곳으로, 참성단에 관한 기록은 이미 고려 때 여러 문헌에서 나타나고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죠. 강화도에는 단군 관련 전설뿐 아니라 청동기 고인돌도 많아 상고시대에도 정치적 세력이 있었음을 짐작게 합니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겠죠.

단군 신화는 나아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과 지상의 존재가 맺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로 땅이나 흙과 관련된 중국 신화와 차별되며, 신성한 나무를 강조하여 동아시아 유목 민족의 신화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시조 신화인 단군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이에요.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은 단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단군 신화는 신의 아들로서 편히 살 수 있는 환웅이 사람들을 돕고자 지상에 내려오면서 시작됩니다. 신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만들고 싶다’라는 바람을 우선한 것이죠. 나아가 본래는 흉포한 맹수인 곰이 인간이 되겠다는 바람을 위하여 오랜 시간 먹을 것을 참는 시련에 도전하여 끝내 극복했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람을 위해서 백일 동안 본능적인 욕구를 참으며 노력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죠. 그렇게 인간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환웅과 진정한 인간의 길을 위해 시련을 넘어선 웅녀의 결합에서 단군이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민족 최초 지도자의 이야기이자, 우리네 정신의 뿌리인 것이죠.

세계 각지에는 수많은 건국 신화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창작된 이야기이며,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죠. 어떤 사실을 바탕으로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를 엮어낸 이들, 즉 우리네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진정으로 바란 무언가가 담겨있습니다. 단군 신화를 들으며 자라온 우리는 알고 있죠. 바로, 홍익인간의 이상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을 위해 짐승의 욕구를 참고 인간이 되라는 마음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우리네 조상님들은 참 멋진 분들이 아닐까요.

중앙일보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