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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가족 같은 나라[2030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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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한국일보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표명한 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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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 '좋좋소'는 중소기업의 비루한 현실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노동환경은 열악한데 처우도 형편없는 '좋소기업'들의 특징을 디테일하게 고증했다는 평을 받았다. 예컨대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기본, 인사 평가는 사장의 그날 기분에 따라 좌우되고 컵라면이나 커피믹스를 비치해 놓는 정도가 사내 복지의 전부다. 직원들은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밥 먹듯이 야근을 하지만 사장은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골프를 즐긴다. 물론 건실한 중소기업도 많겠지만 이처럼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회사도 엄연히 존재한다. 좋소기업이라는 멸칭에는 그런 회사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노여움이 담겨 있다.

좋소기업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가족 경영'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 경영은 단지 회사 사정이 열악해 가족들이 일손을 돕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일도 안 하는 친인척들이 회사에 이름을 올려놓고 월급을 타 간다든지 사모님의 사사로운 일상 수발도 해야 한다든지 하는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물론 직원들에게도 '가족 같은 회사'를 강조하며 열정과 헌신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성장의 과실은 정작 사장과 그 혈육들의 몫이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회사가 하나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바로 우리나라다.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40년 지기의 자녀가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김건희 여사 회사의 직원, 윤 대통령 외가 6촌, 측근 지인의 자녀 등 혈연과 지연으로 얽힌 인물들이 국정운영에 동참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 측은 선거운동에 함께한 이들이 관직을 부여받는 엽관제하에서 문제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런 엽관제 요소들이 유독 친인척이나 측근들에게만 적용되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그 주변 인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지 의문이다. 영부인 지인의 자녀는 물론 극우 유튜버들까지 초대받은 취임식에 정작 여당의 전 대표나 원내대표가 초대받지 못한 걸 보면, 지금 윤 대통령에게 중요한 국정운영 파트너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친인척과 지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혈연과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좋소기업을 움직이는 건 약속된 규칙과 시스템이 아닌 믿음과 정이다. 경영은 원칙과 철저한 시장 분석보다는 사장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심기에 근거한다. 짧게 말해 사장 내키는 대로다. 대선 기간 "좋아 빠르게 가!"를 외치며 재미를 봤던 기억 때문인지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즉흥적으로 현안을 다룬다. '도어스테핑'은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는데 그마저도 "내부 총질"처럼 불리한 질문은 넘어간다. 부처 업무보고도 걸핏하면 연기된다. 처음엔 대통령이 지시했다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도 반발이 거세지니 박순애 장관 혼자 덮어쓰고 물러나는 꼴이다.

가족 같은 회사, 좋소기업이 청년들에게 기피 대상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비단 열악한 환경과 처우 때문만이 아니다. 그런 회사는 원칙도 시스템도 없이 굴러가는 까닭에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사장과 그 주변 사람들만 배를 채우는 회사를 위해 자기 미래를 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난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으로는 세계 10위,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는 세계 24위를 달성했다. 기업으로 치면 이미 대기업 반열에 오른 선진국이다. 이런 나라를 계속 좋소기업 운영하듯 이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계속되는 지지율 하락 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건 혈연 지연과 대통령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굴러가는 '가족 같은 나라'가 아니라 원칙과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공정하고 상식적인 나라'인 이유에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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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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