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우즈 같은 골퍼 되겠다”… 13년 뒤 꿈 이룬 당찬 스무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주형, PGA 우승컵… 2000년대생으론 최초

한국인 최연소 PGA 정복

우즈 첫우승 나이보다 8개월 빨라

美언론 “고속열차같은 한국스타”

스무 살 김주형은 8일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시지필드CC(파 70)에서 열린 윈덤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를 마친 뒤 “마지막 퍼트를 하고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고 했다.

그에게 아직도 별처럼 밝게 빛나는 순간은 2009년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 마스터스 대회였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섹스 스캔들로 추락하기 전 참가한 마지막 대회. 당시 300만달러 넘는 초청료를 받고 온 우즈를 보러 갤러리가 무려 11만명 운집했다. 그 가운데 일곱 살 꼬마 김주형이 있었다. 멜버른에서 티칭 프로를 하는 아버지와 함께.

우즈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선수 이동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던 그 앞에 거짓말처럼 우즈가 나타났다. 용기를 내 ‘고! 타이거’라고 외쳤지만 수줍어서 악수하거나 사진을 찍겠다고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갤러리 앞에서 압도적 경기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우즈의 모습은 이후 김주형의 인생을 가리키는 별이 됐다. “나도 우즈처럼 멋진 골퍼가 되겠다”는 꿈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조선일보

5세때 나무막대로 스윙 - 김주형이 다섯 살 때 나무 막대로 골프 스윙을 하는 모습. 김주형은 네 살 때부터 티칭 프로 아버지 흉내를 내며 골프를 배웠다고 한다. /김주형 가족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주형은 다섯 살 위 형과 함께 바게트 하나를 나누어 먹으면서 온종일 골프 연습을 해도 하나도 배고프지 않았다. 열여섯 살 때 처음 자신만을 위한 맞춤 클럽이 생길 때까지 여기저기서 얻은 클럽으로 백을 채워 골프 대회에 나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 호주, 필리핀, 태국을 거치며 잡초처럼 살아남은 ‘골프 노마드(유목민)’ 김주형에게는 골프를 하는 곳이 집이다. 가슴에 품은 그 별은 그를 ‘꿈의 무대’ PGA 투어로 이끌었고, 마침내 8일 ‘한여름밤의 꿈’처럼 기적 같은 우승을 맛봤다.

김주형은 8일 PGA 투어 시즌 최종전인 윈덤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무려 9타를 줄이며 합계 20언더파 260타로 정상에 올랐다. 공동 2위 임성재와 재미교포 존 허를 5타 차로 제치고 역대 한국인 최연소(20세 1개월 18일)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김주형은 우승 상금 131만4000달러(약 17억원)와 함께 꿈에 그리던 PGA 투어 카드를 받았다.

조선일보

김주형이 8일 윈덤 챔피언십 시상식에서 인사하는 모습. 2002년 6월생인 그는 한국 선수로는 역대 PGA 투어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그는 1라운드 1번 홀(파4)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했지만, 나머지 71홀에서 24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하며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USA 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주형은 지난달 디오픈에서 PGA 투어 특별 임시회원 자격을 얻어 출전 대회수 제한이 없어졌고, 지난주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7위에 올라 페덱스컵 포인트로 다음 시즌 PGA투어 카드를 사실상 확정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PGA투어 정회원이 아닌 김주형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유일한 길은 최종전인 이 대회 우승밖에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미국 골프 채널은 “시즌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김주형에게 시나리오가 딱 하나만 있었다”며 “전반 9홀에서 8타를 줄인 건 새로운 한국 스타에게 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김주형은 올 시즌 9번째, 2020년 PGA 챔피언십 이후 15번째로 참가한 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했다. 2000년대생이 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김주형이 처음이다. 2013년 조던 스피스(존 디어 클래식·19세 10개월 14일)에 이어 둘째로 어린 나이에 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의 우승 기록은 우즈보다 빠르다. 1996년 10월 6일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처음 우승할 때 우즈는 20세 9개월 6일이었다. 김주형은 최경주(52), 양용은(50), 배상문(36), 노승열(31), 김시우(27), 강성훈(35), 임성재(24), 이경훈(31)에 이어 한국 국적 선수로는 아홉 번째로 PGA 투어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김주형은 첫날 1번 홀(파4) 러프에서 실수를 거듭하며 속칭 ‘양(兩)파’라고 하는 쿼드러플 보기를 했다. 하지만 이후 71홀에서 24언더파를 치는 거짓말 같은 반전 드라마를 썼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토머스 더 트레인(토머스와 친구들)’에서 이름을 딴 톰 킴(김주형)은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열차가 아닌 고속 열차다”라며 “그는 엉뚱한 벼락부자가 아니며, 앞으로 우리를 어지럽게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김주형은 이날 PGA 투어에서도 정상급이라는 평을 듣는 아이언 샷을 뽐냈다. PGA 투어의 까다로운 코스에서 그린을 놓친 게 18홀 가운데 단 한 홀뿐이었다. 김주형은 이 대회에서 평균 비거리 301야드와 페어웨이 안착률 72%를 보인 안정된 티샷 능력, 그리고 종합 퍼팅 능력 1위에 오른 정교한 퍼팅까지 흠잡을 데 없이 플레이를 했다. 김주형의 스윙 코치를 맡은 이시우씨는 “스윙 원리를 꼼꼼하게 따지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약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김주형은 기존 한국 골프 스타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김주형은 주니어 시절 어머니 클럽을 빌려서 대회에 나가도 좋은 성적을 올릴 정도로 클럽을 잘 다룬다. 그리고 5국을 거치면서 한국어, 영어, 타갈로그어 등 3국어를 할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다.

김주형은 “어릴 때부터 바라던 PGA 투어 우승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올 줄은 몰랐다”면서도 “PGA 투어는 정말 어려운 곳이다. 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민학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