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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만물상] 노 룩(no-look)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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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용진 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7일 유세에서 정견 발표를 마치 뒤 이재명 후보와 악수하는 장면./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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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방법론에서 ‘메라비언 법칙’은 비언어적 표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누군가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할 때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 반면 보디랭귀지 55%, 목소리 38% 등 본질보다 태도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비중이 가장 큰 보디랭귀지에서 몸 동작보다 중요한 요소가 눈길, 즉 시선이다. 시선은 신념, 확신, 불신, 불안, 오만 등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 상대의 감정에 직접 파고들기 때문이다.

▶시선 처리법이 취업준비생의 중요한 면접 노하우인 것도 이 때문이다. 10년 전 한 대기업이 ‘입사 생생 가이드북’을 냈다. “아이 콘택트가 매우 중요한데 눈을 직접 바라보는 게 부담스럽다면 면접관의 미간을 보라”고 권유했다. 모범 답안은 면접관을 고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가끔 면접관의 약간 뒤에 시선을 두는 것도 괜찮다고 한다. 눈을 깔거나 먼 산을 바라보는 ‘시선 회피’가 최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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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강의를 해보면 시선의 중요성을 바로 안다. 다수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다. ‘노 룩(no-look)’은 이쪽을 보면서 저쪽으로 패스한다는 농구 용어다. 몇 년 전 이 ‘노 룩 패스’가 한국 정치권에서 문제가 됐다. 정치인이 공항에서 눈길도 주지 않고 자신의 비서에게 여행 가방을 굴려 보내는 장면이 노출된 때문이다.

▶시선 회피는 심리 문제의 일종이다. 상대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정시(正視) 공포,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 안절부절 못하는 횡시(橫視) 공포 등으로 나타난다. 심하면 대인 공포증이 되고 더 심해지면 공황 장애로 악화된다. 그런데 한국 정치인에게서 나타나는 시선 회피 증상은 이런 일반적 증상과 반대가 아닌가 싶다. 타인을 증오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시선 무시’ 증후군이다. ‘안하무인(眼下無人)’ 증후군이란 말도 어울리는 듯하다.

▶이번엔 야당 당권 경쟁에 나선 유력 정치인의 ‘노 룩 악수’가 입길에 올랐다. 보통 ‘노 룩 악수’는 이 사람과 악수하면서 눈은 다른 사람을 보는 경우였다. 그런데 이번엔 손은 경쟁 후보의 손을 잡고 있는데 눈길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가 있었다. 좀 더 심한 ‘노 룩’이다. 일부에선 평소에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감정을 드러냈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눈은 뇌에 가장 솔직하게 반응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당내 압도적 지지가 ‘노 룩’의 오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선우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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