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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르포]들이닥친 '똥물' 집 잃어…주거약자 '폭우' 이재민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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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폭우, 속수무책 당한 이재민들 "복구까지 막막하고 착잡해"

이재민 대부분 저지대 혹은 반지하 거주

홀로 살던 40대 여성 키우던 고양이 구하려다 '참변'

"창문에서 물 폭탄이 우당탕탕하면서 갑자기 쏟아지더니 똥물(흙탕물)에 우리 집 전체가 다 잠겼어. 이젠 남는 게 없어 막막하다, 다 버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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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피해를 입은 관악구 신사동 정옥순씨 집 앞. 정씨는 "물이 절반 정도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옥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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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피해를 입은 관악구 신사동 정옥순씨 집 앞. 정씨는 "물이 절반 정도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옥순씨 제공
서울 관악구 신사동의 다세대 주택 지하에 거주하는 정옥순씨(59)씨는 지난 8일 저녁 폭포수 같은 물 폭탄이 집으로 순식간에 들이닥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는 급히 인근 여관으로 대피했고, 9일 동이 튼 뒤 동작구 문창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 급하게 챙겨나온 짐들을 풀었다.

정씨가 묘사한 침수의 순간은 긴박했다.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물에 겁을 먹어 짐이라곤 작은 가방 하나 딸랑 가져온 게 전부다. 임시방편으로 텐트를 설치해 당분간 대피소에서 머무르려고 하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간 서울과 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진 폭우로 주택 침수 등 피해가 속출했다.



서울 내에서도 다수의 침수 혹은 시설 피해가 발생한 동작구 인근 거주 이재민들은 문창초등학교 체육관과 신대방 주민센터의 임시대피소에서 잠을 청했다. 주민센터 측은 두 대피소에 물과 담요, 텐트 등을 마련했다. 폭우 이틀째 대피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동작구 임시대피소에서 CBS 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난 이재민들은 저지대 혹은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다가 어려움에 겪은 사람들이 다수였다.

앞선 정씨는 "어제(8일)는 하루 숙박비 7만원하는 여관에 머물렀는데 언제까지 여기서 머무를 순 없어 대피소에 왔다"며 "회사에도 상황이 이러해 당장은 출근 못한다고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119에 전화하니 물을 빼는 호스가 동이 났다고 하고 구청에 전화하니 대기가 70번이니 기다리라고 한다"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속이 터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그래도 심란한테 이곳에서 지급되는 것은 점심 때 주먹밥과 컵라면이라더라"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대피소를 지키고 있던 동작구 관계자는 "현재 이곳 체육관 대피소는 총 27명 정도의 이재민을 수용하고 있다"며 "오전 시간의 경우 집에 들어찬 물을 빼러 가는 등을 이유로 이재민 대부분이 자리를 비우고 저녁에 잠을 청하러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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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문창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 한 이재민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백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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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문창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 한 이재민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백담 기자
동작구 신대방동의 한 주택 반지하에서 남편과 함께 거주하는 70대 윤모씨 또한 집에 물이 차오르던 상황을 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윤씨는 "어제(8일) 저녁, 같은 동네에 있는 친정에 볼일이 있어 가 있었는데 남편에게 '집에 물이 들어온다'는 연락받고 급히 나왔다"며 "밖으로 나오니 대림 사거리 인근은 이미 물이 무릎까지 차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서둘러 집에 돌아가니 남편이 이불로 문과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막고 있었다"며 "그런데도 순식간에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 집에 있는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부부는 "이불도 다 버려야 하고 젖은 물건들을 다시 사야 하는데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보상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몰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오후 2시쯤 신대방1동 주민센터 3층 대피소에도 17개 정도의 보라색 매트가 펼쳐져 있었다. 그 위로는 이재민들이 가져온 짐과 담요가 놓여 있었다. 이 가운데 두세 명의 어르신들은 매트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매트에 누워 잠을 청하던 노인 이일봉(84세)씨 "집 주인 도움으로 어제(8일) 저녁 이곳 주민센터에 와 하루 묵을 수 있었다"며 "혼자 힘으로는 집에 들어찬 물을 뺄 수 없어 요양 보호사들이 날 대신해 자정까지 물을 빼줬다"고 말했다.

아내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 홀로 지내고 있다는 이씨는 "집에 있는 게 다 젖었다"며 "젖은 물건들을 다 버려야 하고 심지어 장판도 물에 불어 다시 깔아야 하는데 언제 다 할지 착잡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루 3시간 요양 보호사가 와 도움을 줬는데 지금은 물을 빼는데 시간을 다 쓰고 있다"며 "혼자 힘으로는 집을 돌려놓을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점심 식사 안내를 받지 못한 이씨는 정리되지 않은 집에 다시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밥을 신청하긴 했는데 언제 준다고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워 집에 가서 두 숟가락 정도만 뜨고 왔다"며 "정리될 때까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너무 막막하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폭우를 차마 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전날 오후 9시쯤 동작구의 한 주택에서 침수로 인해 40대 여성 A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A씨 역시 빌라 지하 1층에 거주했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A씨 집 문 앞에는 물과 함께 밀려온 쓰레기 더미가 가득 차 문을 여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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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거주하던 빌라 지하 1층 문 앞. 폭우로 밀려온 쓰레기들이 문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쌓여있다. 김정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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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거주하던 빌라 지하 1층 문 앞. 폭우로 밀려온 쓰레기들이 문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쌓여있다. 김정록 기자
A씨 빌라 앞 건물에 거주하는 90대 여성 B씨는 "듣기로는 키우던 고양이를 구하려고 들어갔다가 못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전에 노모와 함께 살았는데 오래전 병원에 입원해 혼자 지낸 지 꽤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빌라 건물주인 60대 한모씨는 "전날 저녁 폭우로 여기가 완전히 한강이었다"며 "하수구로 물이 막 올라오고 엘리베이터로 물이 막 들어가는데 정신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폭우로 인한 이재민 840명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140명이 귀가했고, 700명이 대피 시설에 머물고 있다. 자치구별로는 동작구가 290명으로 가장 많고 관악구(191명), 강남구(106명), 서초구(91명), 영등포구(83명), 구로구(65명), 양천구(14명) 순이다.

한편, 중대본은 지난 8일부터 중부지방에 400㎜ 이상의 강우가 내렸고 앞으로도 중부지방과 전북·경북 북부를 중심으로 30㎜ 내외의 매우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을 것으로 보고 시민들이 안전사고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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