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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록적 폭우에 초토화된 수도권… “비 더 온다는데” 시민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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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바다 된 서울 강남 대치역 사거리

침수 차량 수십대 갓길 옮기기 바빠

대중교통 정상화 안 돼 출근길 2배

차량 침수 4790여건… 손해액 658억

축대 붕괴·하천 범람에 주민 대피도

서울시, 산사태 등 추가 피해 방지 주력

한강 수영장 4곳·따릉이 운영 등 중단

경기도 비상단계 최고 수준 대응 방침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9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역 사거리는 전날 집중호우의 여파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밤 폭우로 침수됐던 차들은 물이 빠진 후 덩그러니 방치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와 도로에 물이 들어차 도저히 운전할 수 없었던 차주들이 차를 세워두고 급히 떠났기 때문이다. 수십 대의 침수차량은 도로 갓길로 옮겨진 상태였고, 일부 차량은 중앙선 부근에 서 있어 차량 통행을 방해했다.

세계일보

혼란의 서초대로 9일 서울 서초대로에 침수 차량이 즐비한 가운데 운전자들이 우산을 쓰고 차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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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버스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통제하던 버스업체 관계자는 “전날 버스가 물에 잠겨 시동도 꺼지고 움직이지도 못했다”며 “견인차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근 주민들도 밤사이 폭우로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치동에 20년 가까이 거주한 60대 박모씨는 “이 동네가 폭우 때 자주 침수되는 지역이긴 한데, 이번 폭우 피해가 가장 큰 것 같다. 2011년 물난리 때보다 심각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날 서울과 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115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피해 복구에 나섰지만 침수된 차량들이 차선을 막고, 일부 지하철과 버스 운행이 중단돼 ‘교통대란’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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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근 도로에 지난밤 내린 폭우로 침수된 차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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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강남·서초·동작·관악구 등 남쪽 지역을 중심으로 비가 집중적으로 내려 피해가 컸다. 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서울 남부지역에 3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강남 등 일부 지역은 시간당 강수량 100㎜ 이상을 기록해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오전 강남역 일대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전날 밤 도로가 잠기고 하수가 역류하면서 물바다가 됐던 상흔이 그대로 남았다. 주변엔 흙탕물이 고여 있었고, 쓰레기도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 인도엔 보도블록이 폭우로 파손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고, 한 도로에는 침수차량들이 차선을 가로막았다.

시민들의 발이 묶이면서 교통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침수차량이 방치된 채 출근길 차들이 뒤엉키면서 혼란을 빚었으며, 지하철·버스 운행도 정상화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여의도에 근무하는 직장인 박모씨는 “원래 9호선 급행열차를 타면 30분 만에 직장에 도착하는데, 일반열차만 운영하고 일부 구간이 제한돼 버스로 갈아타느라 1시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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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밭 된 시장 9일 서울 이수역 인근 남성사계시장에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수해를 입은 상인들이 집기 등을 정리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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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불어나는 물을 미처 피하지 못한 실종자도 발생했다.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급류에 휩쓸리는 등 서초구에서만 4명이 실종돼 소방당국이 수색에 나섰다. 경기 광주에서는 하천 범람으로 2명이 실종됐다.

동작구의 극동아파트에선 전날 인근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축대가 무너졌다. 일부 주민들은 사당2동주민센터, 동작중학교 등으로 대피한 상태다. 인근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동작구 신대방 1·2동 주민들도 임시주거시설로 대피했다. 관악구 서울대에서는 토사물이 내려오고 건물이 정전됐다.

지하상가를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의 피해도 속출했다. 강남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70대 김모씨는 “가게가 물에 잠겨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물을 빼냈다. 이번 주는 문을 닫고 피해 복구에만 매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과 서초구 일대에선 건물에 전기가 끊겨 직장인들이 회사로 출근하지 못하기도 했고, 음식점 등도 영업에 차질을 빚었다.



이번 폭우로 접수된 차량 침수 피해는 하룻밤 새 4000건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12개 손보사에 전날부터 접수된 피해 신고는 4791건, 손해액은 658억6000만원으로 추정된다.

금융권은 집중호우 피해를 본 개인 및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에 나선다. 신한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등은 개인을 대상으로 긴급생활안정자금 대출과 카드 결제자금 청구 유예·분할상환, 카드대출 수수료 할인, 피해일 이후 연체이자 면제, 보험료 납부유예·분할납부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에는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을 비롯해 대출금리 감면(특별 우대금리 제공), 분할상환금 유예 등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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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을 제외한 지하철 9호선 전구간 정상운행이 재개된 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지하철 9호선 노들역에서 시민들이 열차를 이용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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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됐던 지하철역 11곳 모두 복구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가 11일까지 이어질 전망인 가운데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9일 총력 대응을 벌였다.

전날 오후 10시부터 비상근무 3단계 체제에 돌입한 서울시는 밤 사이 침수된 지하철, 지하차도 복구와 함께 산사태 등 추가 피해 방지 작업에 주력했다. 침수됐던 지하철역 11곳은 이날 오후 6시 9호선 동작역을 끝으로 모두 복구돼 정상 운행됐다. 시는 침수된 지하차도 11곳도 이날 안에 모두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동부간선도로 등 주요 도로는 통제와 해제가 반복됐다.

시는 전날에 이어 비상수송대책을 유지했다. 지하철, 버스의 출퇴근 시간대 집중배차 시간을 30분 연장하고, 증회 운행했다. 이 조치는 호우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유지된다.

시는 이날부터 한강공원수영장 4곳(뚝섬, 여의도, 광나루, 잠원)과 물놀이장 2곳(난지, 양화)의 운영을 중단했다. 공공자전거 따릉이 대여도 중단했다. 저지대 하천변 등 침수 위험이 높은 대여소는 임시 폐쇄하고, 자전거를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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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840명에게는 구호물품을 나누고 식사를 지원 중이다. 사망자에 대해선 재난지원금 등 최대 3000만원을 지급하고, 무연고자·저소득 취약계층 장례를 지원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도로 침수, 산사태, 축대 및 담장 파손 지역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응급조치하고 있다”며 “피해 지역, 위험 지역은 최대한 직접 챙기겠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제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도 피해 상황을 주시하며 대응 수위를 높일 계획을 세웠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이날 오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집중호우 긴급점검 회의에서 “현재 비상 2단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호우특보를 고려해 최고 단계로 격상할 계획”이라며 “인명피해 우려 지역에 대한 예찰과 하천 출입 통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도는 전날 오후 3시부터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2단계를 가동 중이며, 시·군 포함 공무원 5505명이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전날부터 휴가였던 유정복 인천시장은 폭우 피해가 잇따르자 이날 시청에 출근해 추가 피해 예방에 나섰다.

수도권·강원중부내륙·강원남부내륙·강원산지·충청·경북북서내륙·전북북부에는 이날부터 11일까지 100∼300㎜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기남부·강원중부내륙·강원남부내륙·충청북부에는 350㎜ 이상 많은 비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장한서·조희연·유지혜·김준영·구윤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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