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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파일] 비만 오면 북한 바라보는 곳…"언제 물 내려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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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북한 황강댐 방류에 수문을 연 군남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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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지났는데도 비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기록적인 물폭탄까지 쏟아졌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도 올여름 들어 수시로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 지역에 내린 비가 남쪽으로 흘러들어 우리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데, 언제 물이 방류돼 내려올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북의 공유하천들



남북이 분단돼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연결돼 있는 만큼 남북은 공유하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임진강과 북한강입니다.

임진강 북쪽 북한 지역에는 황강댐이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40여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높이 40m에 길이 1,230m 정도로 추정됩니다. 총저수량은 3억 5천만 톤 정도로 추산됩니다.

임진강 남쪽에는 홍수조절용댐인 군남댐이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10여 km 남쪽입니다. 하지만, 군남댐의 총저수량은 7,100만 톤 규모로 황강댐의 1/5 수준이어서 황강댐이 대규모로 무단 방류할 경우 이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북한 지역에 비가 많이 쏟아지면 언제 물이 방류돼서 내려올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북한이 황강댐을 무단 방류할 경우, 우리는 임진강 남측 지역의 최북단에 있는 필승교에서 수위 변화를 관측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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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 북쪽 북한 지역에는 임남댐이 있습니다. 일명 금강산댐으로 불리는 댐으로 전두환 정부 시기 북한이 수공(水攻)을 계획하고 있다며 안보 위기에 이용했던 댐입니다.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10여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높이 121.5m 길이 710m로 총저수량은 26억 2천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금강산댐에 대응하는 남한 댐으로는 평화의댐이 있습니다. 군사분계선 남쪽 20여 km에 위치하고 있는데 총저수량 26억 3천만 톤 규모입니다. 평화의댐은 전두환 정부가 북한의 수공 가능성을 빌미 삼아 안보위기 차원에서 건설한 댐이었지만, 북한 지역의 집중호우와 무단방류 시 우리 측의 피해를 막아주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 금강산댐의 붕괴 위험이 제기되면서 당초 5억 9천만 톤 규모보다 증축돼 지금의 규모에 이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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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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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유하천 공동관리 방안 협의



남북이 하천을 공유하고 있고 폭우와 방류로 인한 피해가 연관되는 만큼, 남북은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공유하천에 대한 공동관리 방안을 협의해 왔습니다.

2000년 9월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 당시 남북은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고, 2001년 1월 제1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는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협의회 및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2004년 3월 제8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는 '임진강수해방지와 관련한 합의서'가 채택됐는데, ▲先단독조사 後공동조사 실시 ▲현지조사 후 조사보고서 작성 및 수해방지대책 수립 ▲기자재 및 기상·수문 자료 제공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
2000년 9월 ▲남북, 조속한 시일 내에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공동 추진 합의
제1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001년 1월 ▲경추위 산하에 임진강수해방지실무협의회 및 공동조사단 구성·운영 합의
제8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004년 3월 ▲임진강 수해방지와 관련한 합의서
- 先단독조사 後공동조사 실시
- 현지조사 후 조사보고서 작성 및 수해방지대책 수립
- 기자재 및 기상·수문 자료 제공

이러한 합의에 따라 우리 정부는 2004년 5월 현지조사용 기자재 4억 6천만 원 상당을 북측에 제공하고, 2005년 8월 남측 지역 단독조사 결과를 북측에 전달했습니다. 북한도 2004년 5월 기상·수문 자료 일부를 남측에 제공하고, 2005년 12월 북측 지역 단독조사 결과를 남측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우리 측의 공동조사 제의에 대해 '군사적 보장조치'를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북, 방류계획 사전통보하기도



남북은 공유하천의 방류계획을 사전통보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는데 다음의 두 사례입니다. 2005년 7월 제10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북측은 남측에 임진강과 임남댐의 방류계획을 통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또, 2009년 10월 임진강수해방지 관련 남북실무회담에서 북측은 한 달 전 있었던 '임진강 인명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재발방지를 위해 댐 방류 시 사전통보할 것을 구두로 합의했습니다.
제10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005년 7월 [합의문]
"당면한 올해 홍수철 피해대책을 위해 북측은 임진강과 임남댐의 방류계획을 남측에 통보하기로 한다."
임진강수해방지 관련
남북실무회담
2009년 10월 임진강 인명사고(2009/9) 계기 댐 방류 시 사전통보 구두 합의

여기서 '임진강 인명사고'란 2009년 9월 6일 임진강 둔치에서 야영 중이거나 낚시를 하던 우리 국민 6명이 북측의 황강댐 무단방류로 사망한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사망한 사람 외에도 많은 야영객들이 갑자기 불어난 물로 고립됐다 구조됐고 차량들이 물에 잠기는가 하면 참게와 민물고기 등을 잡기 위해 설치한 통발과 그물 등이 휩쓸려가는 등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은 이상의 합의들에 기반해 우리 측에 댐 방류 시 사전통보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이 남한에 사전통보를 한 사례는 모두 6번인데, 황강댐의 사례가 3번, 임남댐의 사례가 3번입니다. 황강댐의 경우 2010년 7월 18일, 2010년 7월 22일, 2013년 7월 10일 세 차례 사전통보가 있었고, 임남댐의 경우 2002년 5월 31일, 2004년 7월 30일, 2013년 7월 15일 세 차례의 사전통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전통보 없이 댐을 방류한 사례가 훨씬 많은데, 임진강 수계에서만 2005년 9월, 2009년 9월, 2012년 8월, 2018년 6-7월에 무단방류가 이뤄져 우리 정부가 재발 방지와 사전 통보를 요구하는 대북 통지문을 발송한 적이 있고, 이외에도 수십여 차례 무단 방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입니다. 또, 북한강 수계에서도 여러 차례 무단방류가 이뤄진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합의서만으로 보면 북한의 무단방류가 남북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구두 합의는 문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문서화된 합의인 2005년 7월 제10차 경추위의 합의문구(위쪽 표 참고)를 보면, "당면한 올해"라는 문구가 들어있어 북한이 영구적으로 방류 계획을 남한에 사전통보하기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북한의 무단방류는 남북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차원을 떠나 남북의 협력 수준이 아직 이런 기초적인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북, '방류 사전통보' 요구에 무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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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6월 28일 '댐을 방류할 경우 사전에 통지해달라'는 요구를 북측에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강수 상황에 따라 황강댐 무단방류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나서 '윤석열 정부의 전멸'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니 북한이 댐 방류를 사전통보할 리가 없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본격화된 이후 22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아직도 기초적인 수준의 협력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북한에 강경한 보수정부가 지금 집권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되돌아보면 남북관계에 매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되지는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뭔가 대변혁이 일어날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실질적으로 진전된 것은 없었습니다. 북한이 핵포기를 하지 않아 유엔의 대북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에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는 한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대 담론'보다는 '미시적인 실용주의'에 주력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체제, 남북 경제공동체 같은 거대담론이 물론 중요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야말로 담론에 불과합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유엔의 대북제재가 상수화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인정한 상황에서 가능한 남북관계를 추구해가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북한에게도 '비핵화를 하지 않는 한 남한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런 정도'라는 선을 명확히 제시하고, 북한의 호응 여부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른바 '쿨한 남북관계'입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미시적인 실용주의가 작동할 기반이 마련될 것입니다. 산림협력이나 보건의료협력, 댐 방류 시 사전통보 같은 실용적인 협력이 그 때 가서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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