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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여가부 폐지는 ‘헛발질’… 국제사회서 한국 고립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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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디플로맷> 기고한 브릿 로빈슨

“여가부 폐지 아닌 ‘리브랜딩’ 필요”

부처별 성평등 정책 추진 “한계 명확해”


한겨레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국회 앞 도로에서 기습 기자회견을 하려던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을 펼쳤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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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계획이 한국 내부의 위기와 국제사회의 변화에 맞지 않은 ‘헛발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디플로맷>은 지난 5일 “한국의 여성가족부는 폐지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한반도 문제와 글로벌 젠더 정책을 전공한 브릿 로빈슨(Britt Robinson)이 썼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여성연구센터(ICRW)의 홍보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이 글에서 외부인이자 동료 세계 시민의 눈에 비친 한국의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을 다뤘다. 10일 <한겨레>와 진행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로빈슨은 “성평등 퇴행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고립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고문과 이메일 인터뷰는 속한 단체가 아닌 개인 의견이라고 밝혔다.

로빈슨은 여가부 폐지가 아닌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리브랜딩(rebranding·재정의)하는 것으로도 여가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동맹(ally)’이 될 수 있다.” 여가부 역할을 재정의하고, 부처 간 조정 권한을 강화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저출생이나 자살률 급증 등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강력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재정의를 하면서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여가부가 ‘희생양(scapegoat)’이 된 주된 원인이 이름에 있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명칭이 여가부에 대한 남성의 반감을 이해하는 열쇠”라며 여성만 포함된 부처명이 남성들에게 ‘역차별받고 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봤다. 그는 또 여가부 공식 영문 명칭이 ‘The Ministry of Women Affairs and Family’가 아니라 ‘성평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인 점에 주목했다. 이는 ‘성평등’을 중시하는 국제사회를 염두에 둔 의도적 오역일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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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로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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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은 여가부의 ‘젠더 렌즈’가 한국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고문에서 한국의 세계 최저 수준 출생률, 세계 최고 수준 자살률 등을 차례로 짚으면서 한국이 직면한 위기를 해소에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젠더 렌즈’를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 현상과 문제를 성평등 관점에서 해석하는 ‘젠더 렌즈’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과 여기에서 비롯한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업무를 분산하려는 윤 정부의 계획은 “헛발질(misstep)”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에서) 여성은 낮에는 전일제로 일하고, 밤에는 육아·돌봄까지 떠맡는 ‘이중 부담’과 승진 불이익 같은 ‘모성 벌금’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여성이 결혼·출산을 기피하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가족부의 젠더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젠더 관점 없이 접근해 거센 비판을 받은 사례로 2016년 나온 보건복지부의 ‘가임 지도’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로빈슨은 <한겨레>에 여가부 폐지는 젠더 관점, 성평등을 중시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가부 폐지 여파가 국외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그 근거로 ‘페미니스트 외교 정책(Feminist Foreign Policy)’을 들었다. 로빈슨은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 등 9개국이 도입한 이 외교 정책은 성평등과 인권증진을 도외시하는 국가와는 외교적 동맹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며 “G7, G20 회원국도 성평등 추진에 앞장서고, 나이키·아마존 같은 기업이 협력·투자를 할 때도 성평등 같은 사회적 가치를 더 주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여가부 폐지와 성평등 퇴행은 국제사회의 여러 기회로부터 한국을 고립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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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 로빈슨. 브릿 로빈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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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은 독립 부처를 두지 않고, 각 부처에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는 미국 모델은 ‘한계’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여가부 폐지 뒤 대안으로 거론된 모델이기도 하다. 미국은 각 부처에 전문가를 두고 예산을 할당해 성평등 정책을 추진한다. 그는 “각 부처에 할애된 예산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에 부족하고, 각 부처에서 일하는 젠더 전문가들은 해당 부처의 관심에 따라 부처 안에서 고립되거나 후순위로 여겨질 때도 있다”고 했다. 로빈슨은 “이런 체계가 젠더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 실질적·제도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가부를 폐지하고 미국의 전철을 밟는다면 윤 정부의 유산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지속적인 여파를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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