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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흙탕물에 가게 물건 다 망가졌다” 넋잃은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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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어 침수 피해에 또 눈물

조선일보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의 한 만화가게가 지난 8일 내린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가게에 있던 만화책 12만권 대부분이 젖었다고 한다. 이 만화방 사장 신모(60)씨는 가게를 연 지 4개월 만에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큰 피해를 당했는데, 이번 폭우로 가게가 침수되면서 더는 장사를 이어갈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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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낮 12시 50분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이곳에서 3년째 만화방을 운영해왔다는 신모(60)씨가 멀쩡한 캔 음료나 집기류는 없는지 허리 숙여 찾고 있었다. 지난 8~9일 내린 폭우로 그의 장사 밑천인 만화책 12만권 대부분이 물에 잠겨 젖어버렸다. 8일 밤 지하 1층에 있던 가게 안으로 가게 문뿐만 아니라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빗물이 폭포수처럼 밀려들어와 80평 가까이 되는 만화방 안이 30분 만에 성인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한다. 신씨는 “코로나 직전에 가게를 시작해 지난 2년간은 사실상 라면만 먹으면서 버텨왔는데 빗물에 책이 잠긴 걸 보고 이게 현실이긴 한 건지 믿기지 않았다”며 “가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인 성대전통시장에는 120여 곳의 점포가 있는데 이 중 이번 폭우로 100여 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40여 곳은 아예 신씨 가게처럼 물에 잠겼다고 한다.

지난 8~9일 서울 일대를 덮친 폭우는 코로나와 고물가로 가뜩이나 힘겹게 장사해온던 자영업자들에게 큰 상처가 됐다. 도로와 인도를 가득 채운 물이 가게로 밀고 들어오면서 판매하던 물건들이며 냉장고나 전기 설비 등이 망가져 피해가 심각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8일 하루에만 381.5㎜의 비가 내린 서울 동작구 성대전통시장과 신대방삼거리역 일대를 9~10일 돌아봤다. 당시 도로와 인도에 물이 성인 기준 종아리에서 허벅지 높이까지 차올랐던 탓에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다시 하기는커녕 흙투성이가 된 각종 집기를 꺼내고 가게를 치우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화장품 가게와 분식점, 약국 등 가게들 앞 인도에는 폭우로 젖어버린 화장품과 식자재, 비타민 등이 가득 담긴 봉투들이 4~5개씩 놓여 있었다.

신대방삼거리역 인근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69)씨도 이번 폭우로 팔려고 마련해 둔 옷들이 흙탕물투성이가 됐다. 이씨의 옷 가게는 한 벌에 20만~40만원 하는 여름옷을 주력으로 하는 가게라 여름 장사로 1년을 버티는데, 지난 8일 밤 가게 안으로 빗물이 밀려 들어와 사람 허벅지 높이까지 차올랐다. 그는 “20년 동안 이 가게에서 장사를 했는데 이렇게 물난리가 난 적은 처음”이라며 “흙탕물에 젖어버렸으니 세탁해서 싸게 팔아도 살 사람이나 있을지 너무 속상하고 답답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근처에서 15년째 안경점을 운영한 김태현(46)씨는 지난 8일 밤 가게가 물에 잠기는 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안경들이 둥둥 떠다니고, 한 달 전에 1500만원 주고 산 시력 검사 기계가 물에 잠기는데 그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코로나로 줄어든 매출이 회복도 안 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폭우가 특히 심했던 서울 강남 일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10일 낮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사거리에 있는 한 상가에서도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일대는 지난 8일 내린 폭우로 침수된 차량 수십 대가 도로에 그냥 버려지기도 했던 곳이다. 이 상가 지하 12개 점포는 10일 낮에도 여전히 침수된 상태였다. 1층에 있던 32개 점포도 피해를 봤다고 한다. 이 상가에서 수선집을 하는 최모(72)씨는 “수선 맡긴 손님들 옷도 흙탕물에 젖어버렸는데 피해 보상을 해드려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심란하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 폭우로 침수 피해까지 겹쳐지니 더 힘들다고 토로한다. 서울 서초구에서 2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해온 백모(73)씨는 “오래된 상가에서 코로나 어려움을 겪으며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내 인생의 전부와 같은 이 세탁소에서 침수 피해까지 겪게 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윤모(59)씨는 “코로나로 매출이 아예 나지 않으면서 대출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게가 물에 잠겨 식재료는 다 버려야 하고 냉장고와 에어컨 모두 고장이 나버렸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천재지변은 어떻게 할 수 없다지만 장사하는 사람한테는 너무 가혹한 상황인 것 같다”고 했다.

[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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