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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한우의 간신열전] [147] 서울 수해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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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 때 명재상 병길(丙吉)은 ‘병길문우천’(丙吉問牛喘) 일화의 주인공이다. 우천(牛喘)이란 ‘소가 숨을 헐떡이다’라는 뜻이다. 병길이 외출을 나갔는데 길거리에서 패싸움이 일어나 무수한 사상자가 생긴 것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조금 더 가서 소가 헐떡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소 주인에게 다가가 몇 리를 몰고 왔는지를 물었다.

병길을 수행하던 관리가 의아해 물었다. “어째서 사람이 죽고 다친 것은 무심하게 지나치시더니 소가 헐떡이는 것은 걱정하십니까?” 이에 병길이 답했다. “길거리에서 사람이 싸우다 죽고 다친 것은 경조윤(京兆尹·서울시장)의 직책이다. 하지만 날씨가 덥지도 않은데 소가 헐떡인다는 것은 절기(節氣)에 관계된 것이니 재상의 소관이다.”

이 일은 조선시대 임금과 신하라면 모두 알아서 종종 상소에 인용하기도 했고, 임금이 신하들에게 내는 시험문제 책문(策問)에도 등장했다. 이유는 하나, 일의 경중(輕重)과 책임 소재를 제대로 가릴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수해가 났을 때 책임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서울시장이다. 다만 당장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위해 중앙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서울시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울시민이 뽑는 선출직이다. 그러니 사전에 대책을 잘 세웠는지 못했는지는 서울시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은 2011년 우면산 사태 때 도시 수해 안전망을 개선하려고 했으나 후임 시장은 그 계획을 대폭 축소했고, 그 후에도 민주당 일색이던 서울시의회에서는 서울시가 제출한 수방 예산을 삭감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해 복구와 재발 방지책 마련에 여야가 힘을 모으기보다는 오로지 대통령 비방에만 열 올리는 일부 야당 의원의 초점 잃은 지적을 보고 있으니 병길을 수행했던 관리의 근시안을 떠올리게 된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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