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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암 사망률 1위 '폐암'…이젠 피 한방울로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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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폐암학회 ◆

국내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을 인공지능(AI)·혈액검사를 통해 더 빠르게 진단하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막한 세계폐암학회에서는 AI 기술과 혈액검사로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기술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단기업 가던트헬스를 필두로 델파이와 루센스 등 진단기업은 혈액 내 '순환종양 유전자(ctDNA·암세포가 사멸하면서 혈액 속으로 방출되는 암 DNA)'의 양을 검출하는 방식으로 조기 진단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AI 기업인 '코어라인'과 독일 기업 '메비스(MeVis)'는 AI 딥러닝으로 CT 진단의 정밀도를 높이는 기술을 발표했다.

폐암은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려운 질병이다. 사람의 폐는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폐암에 걸려도 별다른 증상을 감지하지 못한다. 병을 방치하다가 말기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진단되는 사례가 속출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혈액검사나 AI 진단을 통해 폐암을 더 빨리 발견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만큼 조만간 미래 폐암 치료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가던트헬스 관계자는 "가던트헬스의 조기 진단 기술 '실드(Shield)'를 이용한 대장암 1~2기 환자의 진단에서 90% 민감도를 보였다. 현재 폐암으로 진단을 확장하기 위해 환자 1만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내 또 다른 진단기업인 델파이의 의료 총책임자 피터 바흐 박사도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에 실린 당사 혈액검사 기술을 토대로 더 빠른 폐암 조기 진단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딥러닝을 활용해 CT 영상 판독을 돕는 기술도 주목받았다. 국내 기업 최초로 세계폐암학회에서 부스를 마련한 AI 소프트웨어 개발기업 '코어라인'은 조기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AI 소프트웨어 '에이뷰 LCS'를 소개했다. 서정혁 코어라인 이사는 "AI 진단의 경우 폐암은 물론 폐결절·폐종양을 6㎜ 수준까지 잡아낸다"며 "의사 역시 AI 도움으로 보다 정확하게 환자 CT 영상을 진단하게 된다"고 말했다.

"치료제 내성 폐암환자에 효과"…4세대 표적항암제 관심집중

국제무대서 존재감 커진 K제약

폐암 원인 돌연변이만 공격

브릿지바이오 임상 1상 발표
세계 최초 개발 기대감 높여

유한양행은 31호 국산 신약
癌진행멈춤기간 약 6개월 늘려

매일경제

지난 8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전시회장 `메세 빈`에서 `EGFR 표적항암제의 내성 극복`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션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 = 세계폐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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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시간)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되고 있는 세계폐암학회는 각기 다른 국가명이 새겨진 명패를 목에 건 연구자들과 제약 업계 관계자들로 연일 북적였다. 슈베르트 등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음악가 이름을 딴 콘퍼런스룸들은 폐암 권위자의 발표를 들으려는 청중으로 자리가 가득 채워졌다. QR코드를 통해 수시로 현장 질의를 하거나 마이크를 잡고 직접 질문을 던지며 연사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전시장에는 이름만 대도 알 만한 MSD, 아스트라제네카, 사노피 등 수십 개 해외 제약사 부스가 즐비했고, 반대편에는 오프라인 포스터 진열대 20개와 디지털 포스터 열람기 7대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조기 진단 외에 이번 학회에서 중요한 화두는 환자에게 희망이 될 혁신적인 항암제 개발 성과다. 특히 반응이 뜨거웠던 항암제는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표적항암제'였다. EGFR는 우리 몸에서 세포를 성장시키는 데 관여하는 수용체로, 여기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해 암을 유발한다. EGFR 표적항암제는 바로 이 EGFR 돌연변이만을 표적으로 삼아 과도한 성장을 억제하는 기전의 폐암 치료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인 폐암 환자 중 약 40%는 EGFR 유전자 변이가 원인이 돼 폐암에 걸린다. 우리나라 환자 다수가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이 치료제의 개발 진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GFR 표적항암제와 관련된 발표로 큰 관심을 받은 곳 역시 국내 기업들이었다. 실제로 유한양행이 발표한 '렉라자 단독 1차 치료요법' 포스터 앞에는 행사 기간 내내 참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바이오벤처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와 제이인츠바이오가 참가한 'EGFR 항암제의 내성 극복' 세션은 학회 기간 중 가장 큰 콘퍼런스룸에서 진행됐는데, 청중석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한양행은 이번 학회에서 31호 국산 신약인 표적항암제 '렉라자'의 단독 1차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선보였다. 기존의 2차 치료제를 넘어 수요가 더 많은 1차 치료제 시장 진입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렉라자 단독 1차 치료요법 임상 1·2상 결과에 따르면 이전에 치료받은 경험이 없는 환자 43명에게 1차 치료제로 렉라자를 투여한 결과, 무진행 생존 기간(암 크기가 더 이상 커지지 않은 채 생존해 있는 기간) 중앙값이 24.6개월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3세대 표적항암제 타그리소의 18.9개월보다 5.7개월 더 긴 수치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더 큰 시장인 1차 치료제에 도전할 기반을 갖췄다"며 "1·2상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진행 중인 단독 요법 글로벌 3상을 성공시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독일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타그리소 외에 또 다른 3세대 표적항암제를 승인받으면 전 세계 폐암 환자의 선택지도 많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자사의 4세대 EGFR 표적항암제 BBT-176의 임상 1상 중간 결과를 이번 학회에서 최초로 발표했다. 4세대 표적항암제는 타그리소·렉라자 등 3세대 표적항암제를 투여한 후 내성이 생겨 암이 재발한 환자를 위해 개발된 약으로, 전 세계에서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아직 없다.

이날 연사로 참여한 표적치료제 분야 권위자인 파시 야니 하버드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번 발표는 BBT-176의 약물 효력과 관련된 긍정적인 분자유전학적 반응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호평했다.

국내 기업의 연구 성과는 EGFR 표적항암제를 넘어 세포 치료제로까지 이어졌다. 국내 바이오 기업 엔케이맥스가 발표한 이 회사 자연살해(NK)세포 치료제 'SNK01'과 미국 머크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4기 환자 대상 병용 임상을 진행한 결과, SNK01과 키트루다 병용 투여군의 2년간 전체 생존율(OS)이 58.3%로, 대조군인 키트루다 단독 투여군의 16.7%를 훌쩍 넘었다.

[빈(오스트리아) =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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