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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동훈의 역주행…‘등’ 한글자 내세워 검찰 수사 범위 넓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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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과 검찰청법 개정안은

‘부패·경제 등’ 2대 범죄로 축소

한동훈, 다른 법률 예시 끌어다

검찰 수사 6대 범죄 이상 확대

“조폭·마약도 경제범죄” 자의적

법조계 “법률 아닌 시행령 지배”

경찰 “돈 노린 살인도 경제범죄냐”


한겨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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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11일 발표한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안은 당초 예상됐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검찰 수사권 복원 의지를 전면에 드러냈다. 지난 4월 전국 검사들의 집단반발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지만, 한동훈 법무부는 논란이 예상되는 ‘범죄유형 분류법’을 제시하며 검찰 직접수사 대상인 부패·경제범죄에 개정 검찰청법에서 삭제한 주요 범죄를 다시 포함했다. 법무부는 상위법인 검찰청법이 위임한 입법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애써 설명했지만,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또다시 시행령을 통해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는 개정 검찰청법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등’을 최대한 활용했다. 지난 5월 개정돼 오는 9월10일 시행에 들어가는 검찰청법(제4조 검사의 직무)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정하고 있다. 애초 ‘부패·경제범죄 중’이었던 표현이 여야 합의 과정에서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바뀌었다. 법무검찰이 이를 활용해 검찰 수사 총량을 줄인다는 개정 취지를 형해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이 된 것이다. 2021년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의 효과와 문제점 검토가 먼저라는 법조계 지적에도, 대선 패배 뒤 성급하게 졸속 입법을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등’으로 바뀌어도 큰 차이는 없다”고 했었다.

법무부는 이날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중’ 대신 ‘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부패·경제범죄를 예시적으로 열거한 것일 뿐”이라는 자체 해석을 내놓았다.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는 범죄 사례 중 하나로 부패와 경제를 예로 든 것이지, 오로지 그것만 수사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법 해석이다. 법무부는 “다른 법률에서도 일반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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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또 부패 등을 정의한 다른 법률들을 끌어다 쓰며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는 부패범죄 범위를 최대한 넓혔다. 예를 들어 부패방지권익위법은 부패행위 가운데 하나로 공직자 직권남용을 거론하고 있다며 “직권남용은 본질적으로 공직자 부패범죄”라는 식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법무부는 개정 검찰청법에서 삭제된 공직자범죄 및 선거범죄 역시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는 “부패·경제범죄로 재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경찰 수사 범죄에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는 범죄가 섞여 있는 경우 “성격에 따라 부패·경제범죄로 재분류”하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논란을 의식한 듯 이 같은 수사권 확대는 “법문언상 명백하며 다른 법령에서도 전형적 방식”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동훈 장관은 이날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직접 브리핑을 하며 “시행령 개정은 법률이 위임한 범위 안에서 이뤄진 것이며,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미리 준비한 개정안 설명자료를 통해 “기존 시행령은 합리적 근거 없이 수사 개시 범위를 축소해 부패범죄 대응에 중대한 공백을 초래했다”며 이번 개정안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해당 시행령안이 검찰 수사권 축소라는 법 개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줄인 것은, 나머지 범죄는 직접수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향후 수사·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들이 ‘검찰이 법의 위임을 받지 않은 수사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결국 검찰 수사 불법성 논란이 야기될 수 있고, 검찰 수사 자체가 무효라는 판단이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시행령의 합법성을 강조하기 위해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는 체포 또는 구속 사실을 피의자의 ‘가족 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 즉시 통보하도록 한 형사소송법을 예로 들며 “변호인도 통보 대상자로 규정돼 있다. 즉 가족은 예시적으로 열거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기본권 침해 법률일수록 위임 입법의 한계 등을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은 법학의 상식이다.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변호인 조력권 규정을 강력한 기본권 침해인 검찰 수사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잦아진 ‘시행령 통치’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위 규범인 시행령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검찰청법 개정 전으로 되돌렸다. 모법에 반하는 위법일 뿐만 아니라,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서만 시행령을 만들라고 정한 헌법에도 어긋난다. 법률에 의한 지배가 아닌 시행령에 의한 지배”라고 했다.

경찰도 반발하고 있다. 일선 시도 청의 수사부서 경찰관은 “민생경제를 침해하기 때문에 조직범죄가 경제범죄로 분류된다면, 돈을 매개로 한 살인도 경제범죄가 되느냐”고 꼬집었다. 법무부가 입법부를 대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순열 변호사(법무법인 문무)는 “공직자범죄에 해당하는 직권남용 등을 다시 부패범죄에 포함한 건 검찰청법 개정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법무부가 입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법제처는 ‘6대 범죄 등’에 대해 “6대 범죄 유형에 속하지 않는 범죄를 대통령령에 추가할 것인지는 입법정책적 사항에 속하나, 6대 범죄 유형을 나열한 취지가 검사의 직접수사를 제한하려는 데 있으므로 6대 범죄 유형에 준하는 범죄에 한해 추가함이 바람직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 대변인은 “당시 유권해석과 이번 시행령 취지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손현수 강재구 박수지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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