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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삼성가노’라고요? 그건 욕입니다, 아주 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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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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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가노'라는 말을 언급한 인물(왼쪽)과 이 말을 처음 했다고 알려진 인물의 드라마 속 모습(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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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노’.

최근 정치권에서 갑자기 불거져 나온 사자성어(?)입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썼는지는 이미 숱한 정치 기사가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건 물론 삼성(三星)이라는 글로벌 기업과는 전혀 무관한 말입니다.

출전은 삼국지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사(正史)인 ‘삼국지(三國志)’가 아니라 대하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되겠죠. 중국에서는 ‘삼국연의’라고 합니다. 삼국지 중에서도 저 유명한 호로관과 사수관 전투 장면입니다.

후한 말 십상시의 난이 일어나자 동탁은 수도 낙양으로 입성해 황제를 바꾸고 정권을 잡습니다. 이제 동탁을 토벌하자는 각지 제후들의 근왕병 연합군이 낙양으로 진군하는데, 동탁의 선봉장인 화웅이 사수관에서 무용을 떨치자, 제후 중 한 명인 공손찬 휘하의 수염 긴 말단 기병이 난데없이 나타다더니 혼자 출전해 술 한 잔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 옵니다. 그가 바로 관우였죠. 그러고 나서 이번엔 연합군이 호로관으로 진군했는데, 그때 동탁 휘하의 굉장한 장수가 한 명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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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속 여포를 그린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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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포(呂布·?~198)였습니다.

이 장면이 ‘삼국지연의’ 5회에 나옵니다. 공손찬이 직접 여포와 싸우다 도주했고 방천화극으로 등을 찔릴 위기에 처했을 때 ‘둥근 눈동자에 고리 눈을 하고 호랑이 수염을 치켜세우며 장팔사모를 다잡고 나는 듯이 말을 몰아 온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장비가 등장할 떄 관용구처럼 늘 따라붙는 묘사 문장이죠. 여기서 장비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세 가지 성을 가진 종놈아, 게 섰거라(삼성가노휴주·三姓家奴休走)! 연인(燕人) 장비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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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 '삼국'에 등장하는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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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와 여포가 5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고, 관우가 달려들어 다시 30여 합을 싸웠어도 승패가 가려지지 않아 유비가 나서자 지친 여포는 그만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는 유명한 장면입니다.

삼성가노(三姓家奴)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원래 여(呂)씨였던 여포가 병주자사 정원의 양아들이 돼 정(丁)씨가 됐고 다시 동탁의 양자로 들어가 동(董)씨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여·정·동’이라는 세 가지 성을 다 가진 천한 놈이란 뜻이죠.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와 관우는 늘 점잖은 문장으로 대화하지만, 장비는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으로 욕설도 서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관우가 유비를 ‘형(兄)’이라고 부르는 반면 장비는 곧잘 ‘꺼거(哥哥)’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말이죠.

과연 장비가 여포에게 ‘삼성가노’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삼국지를 읽어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동탁이 군사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가 권력을 독점할 때 강하게 반대한 사람이 병주자사 정원이었습니다. 동탁은 정원의 양아들이자 심복인 여포의 절륜한 무공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유명한 적토마를 몰래 선물해 여포를 포섭하고, 여포는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을 새 양아버지로 받아들인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스토리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사서(史書)에는 여포가 정원의 측근으로서 우대를 받았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정원과 여포는 상관과 부하 관계였을 뿐 양부와 양자였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여포의 거듭된 배신을 좀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소설적 장치일 뿐입니다. 적토마 얘기도 소설에서만 나옵니다. 다만 여포가 ‘동탁을 아버지로 모시겠다’고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장비의 저 일갈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삼국지 애독자들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장비는 저 상황에서 실제로는 절대로 저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저 상황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장비의 삼성가노 발언’은 허구입니다. 유비·관우·장비가 동탁 토벌 연합군에 참여한 사실이 정사에 나오지 않고, 전투에 참여했다 해도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기록된 것이 없으며, 당시 전투 중 장비가 여포를 만날 일 또한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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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출정하는 관우에게 술을 건네는 애니메이션 '요코야마 삼국지'의 한 장면. 술 한 잔 식기 전에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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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화웅은 또 어떻게 된 것일까요? 관우와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라 손견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유비 삼형제가 여포와 일전을 겨뤘다는 얘기도 당연히 소설에만 나오는 지어낸 얘깁니다. ‘여포가 관우·장비와 2대1로 싸웠는데도 지지 않았으니 얼마나 무공이 뛰어난가’를 운운하는 것도 다 소설 속 캐릭터를 두고 하는 말일 뿐입니다.

소설 속에선 화웅이 처음 사수관으로 나올 때 당초 여포가 군사를 이끌고 가려고 했는데, 화웅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려 하십니까(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라고 말한 뒤 자신이 출전합니다. 저 정도 수준의 군사라면 여포까지 나갈 것 없고 본인이 처리해도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화웅이 한 말이 아니라, 실은 이보다 수백년 전 공자(孔子)가 무성이란 마을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제자 자유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마을이 잘 다스려지는 것을 보고 ‘너는 일국의 재상 정도는 해야 할 인물인데 이런 작은 마을이나 다스리고 있다니 되겠느냐’라는 안타까운 속마음을 실어 말한 농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삼국지연의’에서 실제로 칼을 쓰는 무장들의 대화에 나오게 되니 나름대로 그럴듯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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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드라마 '삼국'에 등장하는 여포. 방천화극을 든 채 적토마를 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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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포가 다시 동탁을 배신하고 그를 죽였다는 소설 속 설정은 사실이었습니다. 정사에선 여포가 동탁의 시비(侍婢)와 정을 통한 뒤 이 사실을 동탁이 알까 걱정하던 차에 사도 왕윤이 그에게 접근해 동탁을 죽이자고 말합니다. 여포가 동탁과 ‘부자 사이’임을 말하자 왕윤은 “죽을까봐 걱정하면서 어찌 부자 관계를 운운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드디어 여포는 입궁하는 동탁을 창으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시비’라니? 춘추시대 월나라의 서시, 한나라의 왕소군, 당나라의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이라 일컬어지는 왕윤의 수양딸 초선은 어디로 간 걸까요? 4대 미인 중에서 실존 인물은 3명뿐이었습니다. 초선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가공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한 술 더 떠서 일본 작가 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는 동탁이 죽은 뒤 초선이 자결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요시가와 삼국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국내 여러 번역본이 이 설정을 차용했는데,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서도 이 얘기가 아주 처절하게 묘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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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에서 묘사된 동탁, 초선, 여포.


세월이 흘러 군웅의 한 명이 된 여포는 하비 전투에서 조조에게 패해 포로가 됩니다. 부하에게 배신당했다는 소설 속 설정과는 달리 실제 여포는 부하들에게 ‘나를 죽여 내 목을 가지고 항복하라’고 했으나 아무도 말을 듣지 않자 스스로 나가 항복했다고 합니다. 소설보다는 상당히 기개 넘치는 말로였습니다.

이문열 삼국지에서 흥미롭게 분석한 여포의 마지막 장면이 있습니다. 여포는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나를 부하로 삼아 천하를 평정하라’고 말합니다. 조조는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옆에 있던 유비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은 유비가 여포에게 자비를 베풀 것으로 짐작했으나, 유비는 ‘조조가 여포마저 얻으면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격’이라는 생각에 냉정한 어조로 뜻밖의 말을 합니다.

“정건양(정원)과 동 태사(동탁)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그제서야 여러 차례에 걸친 여포의 배신을 되새긴 조조는 여포를 죽입니다. 유비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포가 조조에게 살려줄 것을 청하고, 조조가 유비에게 이를 묻고, 유비가 이런 대답을 했으며, 조조가 그 말을 듣고 여포를 죽인 것은 모두 정사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결국 여포를 죽게 한 것은 정원과 동탁으로 대표되는 그의 주군에 대해 여러 차례 반기를 들었던 여포 자신의 ‘배신의 이력’이었던 것입니다.

자, 다시 ‘삼성가노’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포가 사실은 세 가지 성(姓)을 지닌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이런 말이 역사에 기록된 것도 아니며, 그 말을 했다는 사람도 그 시점에 그 현장에 있었을 리 만무하니,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말일까요? 아니면 그런 말이 당시에 실제로는 없었다고 해도, 그 말이 가리키고 있는 당사자는 숱한 배신을 저질렀으며 결국 그 배신 때문에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어넣은 것이 사실이니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 생각에,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것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형편없는 욕설이라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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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그린 말 탄 고선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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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어에서도 그렇지만, 과거 상대방을 ‘가노(家奴)’나 ‘노(奴)’라고 지칭하는 화법은 ‘이런 종놈의 ××’ 정도에 해당하는 최악의 비하어였습니다. 당나라 때 고구려 출신의 장수 고선지가 전공을 세우고 조정에 직접 보고를 올리자, 그를 시기한 강(羌)족 출신의 상관 부몽영찰은 ‘개 창자를 씹을 고구려 ××(啖狗腸高麗奴)’이란 아주 심한 욕설을 하는데, 여기서 ‘××’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노(奴)’였습니다. 부몽영찰은 이어서 ‘노(奴)’가 들어가는 더 심한 욕을 합니다만 강도가 너무 심해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고선지는 항변하는 대신 아주 절제되고 인내심 어린 언어로 ‘내가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은 당신 덕분이다’라며 부몽영찰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해 줬는데, 역사서에 남은 두 사람의 말을 보고 후세인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했을까요.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종종 고상해 보이는 ‘사자성어’를 찾아 적시에 써먹어 유식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 글자로 돼 있는 말이라고 해서 모두 그럴듯한 고사성어는 아닙니다. ‘삼성가노’는 단기천리, 비육지탄, 삼고초려, 수어지교, 고육지계, 괄목상대, 칠금칠종, 읍참마속, 국궁진췌, 육출기산 등 삼국지에서 유래된 다른 사자성어처럼 깊은 뜻을 함축한 성어라기보다는 그냥 욕이라고 봐야 할 말입니다. 만약 이런 욕설이 원래의 어감(語感)을 잃은 채 무분별하게 사용되거나, 발화자 스스로 도덕성에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더욱 곤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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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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