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관계 강조하며 은근히 러·중 견제…'중립' 아프리카는 실리 추구
지난 8일 판도르(우) 남아공 외무장관과 같이 걷는 블링컨 미 국무장관 |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르완다 방문을 끝으로 사실상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지난 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방문을 시작으로 민주콩고공화국에 들렀다.
그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관문인 남아공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새 아프리카 전략을 발표했다.
아프리카와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개방과 민주주의, 지속가능한 경제개발, 기후변화 대처 등에 협력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블링컨 장관은 2050년이면 세계 인구 4명 중 1명꼴로 아프리카인이 될 것이라는 점을 거론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세계의 '주요 지정학적 힘'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아프리카에 이래라저래라 선택을 지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아프리카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와 함께하겠다"면서 시혜적 차원에서가 아닌 동반자 관계를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의 아프리카 순방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의 아프리카 순방 이후 채 한 달도 안 돼 이뤄졌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엔을 무대로 아프리카에서 적지 않은 우군을 얻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상당수가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지난 10일 민주콩고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 블링컨 국무장관 |
블링컨 장관은 그러나 아프리카가 강대국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각축의 장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미국이 누구를 능가하려는 차원에서 아프리카에 접근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의 용병회사 와그너 배치가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안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견제구를 던졌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지 않을 경우 주권국가의 영토보전이라는 국제사회 규범이 약화해 아프리카를 포함해 전 세계에 파급 효과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건설을 매개로 환경을 파괴하고 막대한 빚더미를 안기는 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그의 순방이 러시아, 중국과 경쟁 구도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신냉전'임을 시사한 대목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그는 미국이 아프리카에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코로나19 백신과 식량 등 인도주의 지원을 했다고 차별화했다.
또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에서 분쟁이 불거지기 전에 갈등 상황을 완화하고 조정하기 위해 연간 2억 달러(약 2천600억 원)씩 10년간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콩고를 방문해서 세계의 허파로 여겨지는 콩고분지 열대우림 보전과 석유 개발의 조화를 위한 자금제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이웃 나라 르완다와 반군 지원 문제를 둘러싼 갈등 중재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르완다에선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주인공인 폴 루세사바기나의 불법 구금 문제에 큰 우려를 보이며 미국의 오랜 동맹인 폴 카가메 정권을 압박했다.
르완다 대통령 만난 블링컨 국무장관 |
요컨대 블링컨 장관의 이번 아프리카 순방은 과거처럼 지시형으로 하지는 않겠지만 차근차근 설득하면서 민주주의, 인권, 환경보호 등 가치에 기반한 외교를 펼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작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는 어떻게 이에 대응할까.
날레디 판도르 남아공 국제관계협력 장관은 기자들과 문답에서 "남아공 누구도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도 똑같이 우려해야 한다"고 형평성을 강조했다.
판도르 장관은 또 일부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면서 아프리카는 이전처럼 약자로서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타이완 방문으로 야기된 미중 갈등에 대해서도 "우리는 미중 갈등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다"면서 세계 양대 강국이자 가장 큰 두 경제권인 미중이 협력해야만 아프리카도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부에서 보는 신냉전 시각과 달리 아프리카 입장에선 서방 대 러·중의 대결 구도에 휘말리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려 한다는 현지 전문가 분석이 타당해 보이는 대목이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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