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세계 새 질서 원하는 푸틴 “시간은 나의 편”… 장기전 몰아가나 [뉴스 인사이드 - 우크라 사태 어디까지]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종전도, 장기전도 푸틴 손에

시간 끌며 ‘反젤렌스키 정권’ 수립 목표

유럽 국가 흔들어 국제위상 제고도 노려

2024년 재집권하려면 2023년 중 끝내야

일각선 “전쟁 더 끌기는 어려울 것” 전망

승자와 패자 나온다면…

우크라 승리 땐 서방 안보 영향권 확장

러 승전 선포하면 제재 영구화 가능성

우크라 동부지역 ‘제2 철의 장막’ 부상

초기 냉전 시대 대치 상황 재현할 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감행한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정세에 격변을 가져왔다. 식량 위기와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위기와 겹치면서 전 세계 경제성장을 둔화시켰다. 신냉전의 무대도 확대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본격화하던 대결과 갈등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구권과 미국 주축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핵심으로 하는 서방의 동서대결로 업그레이드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와 유사한 상황 전개에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수석 편집자였던 영국의 국제정세분석가 에드워드 루카스는 “서베를린을 둘러싼 냉전의 대치 상황이 오늘날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끝날 수도, 이어질 수도 있는 이 전쟁은 어떻게 될까.

세계일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레믈궁에서 화상 회의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모스크바=타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푸틴, 장기전으로 ‘유럽 새 질서’ 원하나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6개월을 앞두고 있으나 푸틴 대통령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운 러시아는 예상과 달리 초전 제압에 실패하고 동·남부 지역에서 지리멸렬한 소모전을 이어가고 있다. 푸틴 정권은 불투명한 전황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라고 말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6월 말에도 전쟁 초기에 했던 것처럼 기자들에게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푸틴 대통령의 인식에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다. 혹독한 경제제재에도 러시아가 우격다짐 식으로 벌이는 우크라이나 침공엔 푸틴 대통령의 의중이 철저하게 반영돼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심리를 알아야 향후 전쟁의 전개 양상을 대략적으로나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가.

푸틴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표는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질서 재구축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전으로 몰고 가는 것도 불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장기간 푸틴 대통령을 지켜봐 온 모스크바 카네기국제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푸틴 대통령이 전쟁 계획을 다시 짰으며, 5월 말부터 러시아가 마지막 승자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며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일보

지난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야시누바타 인근에서 친러시아 반군세력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소속 군인들이 우크라이나군을 향해 152㎜ 야포를 발사하고 있다. 야시누바타=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이 전쟁을 지구전으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일부 지방을 획득한 상태에서 시간을 끌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거나, 반(反)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세력이 대통령을 몰아내고 친러 정권을 수립할 것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그는 “푸틴의 전쟁 목표 중 하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서방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러시아에) 우호적인 서방국들이 형성될 것이라는 데 판돈을 걸고 있다”고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푸틴은 이미 유럽과 전쟁 중이며, 그의 목표는 유럽이 침수되는 것”이라고 했다.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나토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서방 국가들과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나토와의 충돌은 회피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유럽 국가들을 흔들면서 유럽연합(EU)이나 나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도자 지위까지 오르려 한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전부터 이런 구상을 품어 왔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의 전기작가 필립 쇼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푸틴은 ‘소련은 해체됐지만, 나토는 왜 여전히 존재하는가’라고 의문을 품어 왔다”며 “(러시아는) 유럽을 분할하는 새로운 베를린 장벽을 원치 않았지만, 나토의 확장은 러시아를 턱밑까지 압박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1991년 독립 선언으로 소련 해체를 촉발한 우크라이나에 집착해 왔다”며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시도하면서) 서방의 전초 기지화되자 전쟁 구실로 삼았다”고 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쟁의 출구 전략은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에 대해서는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 성공부터 러시아와 나토의 전면전까지 다양하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지난달 전쟁의 양상을 △우크라이나 승리 △러시아 승리 △제2의 철의 장막(냉전 당시 유럽 내 동서진영 경계를 가리키던 용어) △나토·러시아의 전면전이라는 4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반격에 성공해 러시아가 종전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에 러시아는 크름 반도를 제외한 점령 지역에서 철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동·북유럽의 안보환경이 러시아에 크게 불리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스웨덴·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고, 우크라이나도 나토 가입은 포기하지만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서방의 정치·안보영향권을 확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세계일보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6개월이 다 돼 가지만 종전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시위대가 7일(현지시간) 마리우폴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민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마리우폴=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러시아 승리 시나리오다.

러시아가 돈바스지방 등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영토로 흡수하고 승전을 선포하면서 전쟁을 종결짓는 것이다. 애틀래틱카운슬은 지난 3월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점령되고 친러 괴뢰정부 수립까지 예상했으나,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거세 이런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영구화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시나리아오는 루한스크·도네츠크 등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지속해서 충돌이 일어나 분쟁지역화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서방과 러시아를 나누는 새로운 경계가 될 수 있다. 이 지역이 냉전시대 철의 장막(Iron Curtain)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는 의미에서 제2의 철의 장막이라고 부를 수 있다. 냉전 때처럼 동유럽의 군사적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과거 소련 구성국이 주축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을 규합하려 하면서 유럽의 초기 냉전과 유사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네 번째 시나리오인 나토와 러시아의 전면전은 러시아의 나토 회원국 오폭 등의 중대한 실수 없이는 일어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역대 정권에서 3차례(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러시아 정책을 담당한 피오나 힐 전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은 푸틴 대통령이 2024년 재집권을 노린다면 전쟁을 내년 중 마무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일보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회원국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마드리드=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와 인터뷰에서 “푸틴 자신도 2024년 재선에 성공해야 하므로 시급한 상황”이라며 “올해 겨울이 지나면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제재의 영향이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표면 아래 자신을 향한 많은 불만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전쟁을 더 끌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최악의 경우의 수인 핵충돌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전쟁 초기 실패 이후) 푸틴의 계획이 보다 현실적이 됐다는 점은 단기적으로 핵위기가 고조되진 않을 것이라는 의미”라면서도 “그의 계획이 실패해 실망감이 커지면 크게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은 “나토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며 “푸틴과 그 추종자들이 무자비한 탄압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도 절약이 필요하다”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유럽의 공급 위기가 가중될 수 있으나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