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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6년만에 끝난 '국정농단'…"언제까지 정치리스크 안고갑니까"[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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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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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정치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합니까.”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의 사면·복권이 발표된 지난 1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시작된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로 이 부회장, 신 회장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인과 기업이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 권력에 기대 이권을 노린 것 아니냔 시각도 존재하지만 재계에선 “살아있는 권력의 요구를 무시하긴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재계의 잘못도 있지만 권력자가 정책 실행을 위해, 혹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기업을 압박할 경우 ‘정치 리스크’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사면·복권이 발표되자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글로벌 경제 복합 위기와 주요국 패권경쟁 격화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경영 일선에 복귀해 국민경제에 헌신할 기회를 준 대통령 특별사면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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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국회의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주요 대기업 총수들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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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리스크 여전, ‘잘못된 관행’ 끊어내야



대한상공회의소도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 입장문에서 “주요 기업인의 사면·복권이 이뤄진 것을 환영한다. 다만 사면 폭이 크지 않은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경제계는 기업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더 받을 수 있도록 윤리적 가치를 높이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다른 단체도 환영 입장을 내놨다.

눈길을 끈 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였다. 전경련은 이날 낸 논평에서 “대통령께서 광복절 특사를 통해 경제인들이 경영 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을 크게 환영한다”며 “경제계는 사업보국의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단체 맏형’으로 불렸던 전경련은 최근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단체장 오찬 회동에 초청받은 데 이어, 5월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계속 ‘패싱’ 당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위상이 회복된 셈이다. 지난달엔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공동 개최한 한·일 재계회의에 4대 그룹 사장이 모두 참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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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왼쪽)과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이 지난달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제29회 한일재계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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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경련이 박근혜 정부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책’ 역할을 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이후 주요 회원사였던 4대 그룹이 모두 탈퇴하면서 존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정치 리스크’가 우선인 것도 사실이지만 과거 잘못된 관행을 주도한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날 광복절 특사와 관련한 경제단체 논평에서 과거사를 반성한 건 ‘국민 신뢰를 위해 윤리적 가치를 높이겠다’고 한 대한상의가 유일했다.

4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치 리스크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경제단체가 정부와 재계 사이의 ‘밀실 통로’ 역할을 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특사 제외 기업, “실망스럽지만 어쩔 수 있나”



당초 광복절 특사를 기대했던 일부 기업인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2016년 횡령과 원정도박 등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은 뒤 2018년 가석방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형 집행 종료 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5년간 취업이 제한된 상태였다.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된 뒤 지난해 가석방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이번 사면 대상에서 빠졌다. 회사 자금을 아들에게 저이율로 무담보 대출해 배임 혐의 등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제외됐다. 박 회장은 법무부와 취업제한 행정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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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8.15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됐다. 2012년 강 전 회장이 당시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 경남 창원시 조선소를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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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사면 받은 기업인 가운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눈길을 끌었다. 강 전 회장은 횡령과 계열사 부당지원, 분식회계 등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된 상태였다. 쌍용그룹 평사원으로 입사해 ‘샐러리맨 신화’를 일궜던 강 전 회장은 선고를 앞두고 노동조합,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가 재판부에 폭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사면으로 경제 활동이 가능해졌지만 지분을 가진 기업이 없고 고령이어서 재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가장 큰 적폐는 정치 갑질…기업만 지탄 받아”



기업들은 반복적으로 정치 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과거처럼 정권의 눈에 잘못 들어 기업이 공중분해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집권 세력은 정책 시행, 일자리 창출 등 필요할 때마다 기업에 손을 벌렸다.

김태기 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도 얻을 게 있어야 ‘정경유착’이지, 지금 시대에는 ‘정치 갑질’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 전 교수는 “한국의 가장 큰 적폐는 정치 갑질이다. 권력이 요구하는 걸 무시하기 어려워 마지못해 나서는 경우가 많다”며 “정치권이 문제를 일으켜 놓고 대통령 사면과 같이 정치적 해결에 나서면 국민들로부터 지탄받는 건 결국 기업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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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국회 5공특위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증언하고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기업에 손을 내미는 '정치 갑질'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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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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