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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쓰레기 2.5t 나온 그 남자 집, ‘외로움’의 냄새가 났다 [채기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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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청소업체와 쓰레기집에 가봤더니

한 때 가족과 살던 집, 이젠 쓰레기와 악취

“쓰레기를 보면 인생이 보이더라”

지난 3일 오전 8시 30분, 수도권의 한 군인아파트. 특수청소업체 직원 최모(46)씨 등 3명이 방진복을 입고, 장갑을 낀 채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이날 작업할 집은 건물 2층에 있는 20평대 ‘투룸’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에 들어서자 택배 상자, 소주병 등이 발 디딜 틈 없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더운 날씨에 방치된 음식물 쓰레기에서는 썩은내가 진동했고, 바닥에는 좁쌀만 한 벌레와 사체(死體)가 득실댔다. 최씨는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했다.

특수청소업체들은 여름이 최성수기다. 저장강박증 환자의 ‘쓰레기집’, 반려동물의 배설물, 고독사(孤獨死) 같은 사망 현장에서 부패가 일어나면서 악취가 심해지기 때문이다. 기자는 특수청소업체 ‘결벽우렁각시’와 함께 ‘쓰레기집’ 청소 현장에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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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한 군인아파트에 있는 '쓰레기집' 베란다. 쓰레기 봉지들로 가득 찬 베란다는 발 디딤 틈조차 찾기 힘들다. 봉지에는 악취와 함께 좁쌀만 한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채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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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자 혼자 사는 집, 쓰레기 2.5t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나?”

현관을 지나 마주한 첫 방은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택배 상자와 포장지 등이 1.5m 높이로 쌓여 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룩진 매트리스와 베개는 거실에 나와있었다. 매트리스 옆에는 소주병, 음료수 캔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주방 선반과 식탁에는 겹겹이 쌓인 배달 용기가 빈틈 없이 놓여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치우지 않았나보다. 베란다를 가득 채운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벌레는 덤이다.

오전 9시쯤, 직원들은 20L 용량 파란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일반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분류할 처지가 아니었다. 한번에 파란 봉투에 쓸어 담았다. 문제는 무게다. 작업자 이 모(46)씨는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며 “치워도 치워도 줄어들지 않는 기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쓰레기 분리수거는 4시간 이상이 걸렸고,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약 2.5t(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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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9시 30분쯤, 특수청소업체 직원들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다. 이 집 쓰레기의 대부분은 택배 상자, 배달 용기와 빈 소주 병이었다./채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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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정리가 끝나면 오염 및 얼룩을 지운다. 락스·세제를 뿌린 뒤, 걸레나 수세미로 닦는 것이다. 오염이 심하면 장판과 벽지도 뜯어야 하지만, 다행히 이 집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음은 벌레 퇴치 및 살균·소독 작업이다. 힘 쓸 일은 적지만 이 과정도 간단치 않다. 벌레 퇴치용 약물을 뿌리고 1~2시간이 지나면 바닥과 벽 틈새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기어 나온다. 상태가 좋지 않으면 냄새의 진원지를 없애는 살균 작업도 2~3 차례 반복한다. 이날 작업한 ‘쓰레기집’은 총 작업 시간 8시간 끝에, 오후 6시쯤 청소가 끝났다.

◇쓰레기에도 사연이 있다

군인아파트는 대개 군인·군무원이 산다. 청소를 의뢰한 이 집의 주인은 40대 남성이다. 군인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성이라면 부사관(상사급) 혹은 장교(대위·소령급)일 가능성이 크다. 단정하고 엄격한 생활을 강조하는 군에 근무하는 사람이 어쩌다 ‘쓰레기집’에 살게 됐을까? 특수청소업체 사장 구찬모(40)씨는 “특수청소 의뢰인들은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 정신적으로 아픈 경우가 많다”며 “집 청소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활 습관, 성격 나아가 아픔까지 알 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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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집'의 거실에 검게 얼룩진 매트리스와 베개가 놓여 있다. 이 집의 의뢰인은 업체 측에 "침구는 사용해야 하니 버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채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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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유일하게 정돈된 곳은 문 앞 신발장이었다. 구찌, 샤넬 등 명품 신발 10여 켤레가 가지런히 보관돼 있었다. 의뢰인은 사치스럽고, 꾸미는 걸 좋아할 것 같다. 그러나 집안 가득 쌓인 배달 용기와 택배 상자는 그가 한동안 집 위주의 생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실 구석구석을 차지한 100여 개의 빈 소주병으로 보아, 그는 알코올 중독일 가능성도 있다. 바닥에 포장이 뜯긴 라면 상자들을 살펴보니, 유통기한은 2021년 7월 21일까지였다. 그는 최소 1년 이상 이와 같은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집안 상태만으로 이 모든 것을 단정할 수는 없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눈에 띄는 물건도 있었다. 거실 벽면에 걸려 있는 커플 캐리커처 사진과 침실에 있는 유아용 장난감 세트. 업체 직원 이모(46)씨는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 집주인은 처, 자식과 별거 중인 것 같다”며 “혼자 살게 되면서 술에 의존하고, 청소도 손 놓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또다른 직원은 “무슨 일을 겪어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참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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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장실 선반에 다 쓴 휴지의 휴지심이 빼곡히 쌓여 있다./채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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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현상일 뿐...마음을 치료해야

12년 넘게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한 구씨는 “쓰레기집은 몇 달만 지나면 똑같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쓰레기 청소는 뒤처리일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치료가 동행 돼야 한다고 말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쓰레기집’들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본인이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이나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쓰레기집은 그 자체로 심리적 불안과 무기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고 했다. 이어 “업체에 쓰레기 청소를 의뢰할 사람이라면 상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때부터 전문가의 상담과 치료가 이뤄지는 게 좋다”며 “방치된 마음의 병은 계속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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