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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루슈디 공격범, 살인미수로 기소···“끔찍한 폭력” 규탄 속 이란 매체는 “신의 복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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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슈디(2018년 9월 촬영).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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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킨 소설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슈디(75)를 흉기로 찌른 레바논계 20대 남성이 13일(현지시간)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 뉴욕주 셔터쿼 카운티의 제이슨 슈미트 지방검사장이 이날 “12일 공격의 용의자 하디 마타르(24)를 2급 살인미수와 2급 폭행으로 공식 기소했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슈미트 검사장은 이날 법원에서 “루슈디가 약 10차례 칼에 찔렸다”며 “이번 사건은 루슈디를 겨냥한 사전에 계획된 공격”이라고 밝혔다. 마타르는 전날 뉴욕주 서부 셔터쿼에서 강연을 위해 무대에 오른 루슈디에게 달려들어 목과 복부 등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뒤 현장에서 체포됐다. 법원은 마타르에 대해 보석 없는 구금을 명령했다.

루슈디는 피습 직후 헬기로 인근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수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루슈디의 대리인 앤드류 와일리는 “루슈디가 긴급수술 후 산소호흡기를 착용했으며, 13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 한쪽을 잃을 수 있고 간이 손상됐으며 팔 쪽 신경도 다쳤다”고 전했다.

마타르의 구체적인 범행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레바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마타르는 캘리포니아주 출신이지만 최근 뉴저지주로 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의 부모가 살던 레바논 남부 아륜시의 알리 테흐페 시장은 이들이 이란의 후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지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슈미트 검사장은 법원에 보석 불허를 요청하면서 파트와(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내린 일종의 포고령)가 마카르의 범행 동기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1988년 출간된 ‘악마의 시’가 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키자 다음 해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가 이슬람교도에게 루슈디를 살해하라는 파트와를 선포했다.

루슈디는 누구


1947년 인도 뭄바이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루슈디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한때 파키스탄에서 언론인 활동을 했던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1975년 소설 ‘그리머스’로 등단했다. 1981년 ‘한밤의 아이들’로 그해 부커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3년에는 지난 이십오 년간 부커상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을 뽑는 ‘부커 오브 부커스’에 선정됐다.

그는 1988년 출간한 ‘악마의 시’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그의 열두 명의 아내를 창녀에 비유했으며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라고 언급했다. 이슬람 신성모독으로 파트와가 선포되자 그는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오랜 시간 도피 생활을 했다. 루슈디 목에는 330만달러 이상의 현상금이 걸리기도 했다. 그는 2000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매사추세츠공대, 애틀랜타 에모리대에서 문학 강의도 했다.

서방 “표현의 자유 침해” VS 이란 매체 “신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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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슈디를 흉기로 공격한 혐의를 받는 하디 마타르가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셔터쿼 카운티 법원에 출석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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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슈디 피습을 두고 서방에선 표현의 자유 침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타인이 표현의 자유를 실천한 말과 글에 폭력으로 대응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도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며 “두려움 없이 사상을 공유하는 것은 자유롭고 열린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라며 “루슈디 및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이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그 누구도 자신이 쓴 글 때문에 위협을 당해선 안된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이번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기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행위에 대한 거부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란 측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란이 이번 습격과 연관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루슈디가 당한 일에 대해서는 동정하지 않았다.

이란 정부 차원의 공식 메시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모하마드 마란디 이란 핵협상팀 고문은 13일 트위터에서 “이슬람을 향해 증오와 경멸을 끝없이 쏟아낸 작가를 위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현재 미국과 이란핵합의(JCPOA) 복원 회담을 진행 중이다. 마란디 고문은 그러면서 “핵협상이 막바지인 미묘한 시점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이란이 암살하려 했다는 미국의 발표와 루슈디 피습이 연이어 발생하다니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미국이 이란혁명수비대(IRGC) 소속 샤흐람 푸르사피(45)를 볼턴 전 보좌관 암살을 교사한 혐의로 기소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핵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려는 음모일 수 있다는 뉘앙스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도 12일 트위터에서 “조작된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은 미국이 정치적으로 파산했다는 증거”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이란 혐오를 부추기기 위해 타당한 증거 없이 이란에 대한 혐의를 씌우려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이란의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레바논계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13일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루슈디 피습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이란 매체는 강경한 논조를 내비쳤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가 편집주간을 임명하는 대표 보수지 카이한은 “신의 복수”라며 “변절자이자 악마 루슈디를 뉴욕에서 공격한 용감하고 순종적인 이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을 “다음 차례”라고 지목했다. 다른 일간지 코라산은 “악마가 지옥으로 향하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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