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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왜 진보 정치인은 헛다리 짚나...이준석만 간파한 '청년의 본심' [박가분이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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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13일 기자회견장에서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배경은 지난 대선 때 정치 개혁을 요구한 청년들의 집회 장면. 그래픽=김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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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여당에 대한 청년 지지세가 급전직하한 것은 청년들이 바라는 의제를 공론화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20%대로 내려앉은 지지율 하락세(15일 30%로 반등한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속에서 ‘여가부 폐지’ 등 보여주기식 행보로 청년 남성을 붙잡으려 안간힘 쓰는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이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불화 한가운데서 나왔지만 이와 별개로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이준석은 정부 여당의 청년 의제나 청년 정책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그가 지적한 건 청년들의 변화한 ‘세계관’ 내지는 ‘생활감각’을 대변하려는 근본적 문제의식이 아예 결여됐다는 점이다. '청년 의제를 공론화하는 능력' 말이다.



청년 의제는 왜 계속 제자리걸음인가



사실 이런 능력의 부재는 비단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들과 대척점에 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비롯해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해도 무방하다. 오랫동안 온 사회가 청년 의제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뤄왔는데도 왜 여전히 제자리걸음일까. 지금까지의 청년 담론이 주로 ‘사회적 자원을 청년에게 얼마만큼 할당할 것인가’라는 기술적 분배 문제에 집중한 탓이다. 이를테면 (사정이 어려운) 청년에게 얼마의 금전적 혜택을 줄 것인가, 정당이나 정부 요직에 청년을 얼마나 기용할 것인가에만 치중했다. 그 결과 진짜 청년 정치인이 아니라 숱한 청년 정치 자영업자만 양산했다. 그리고 모두 목격한 것처럼 이들 대부분은 또래 청년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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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단숨에 비서관(1급 공무원)으로 발탁된 박성민씨. 당시 청와대는 구색 맞추기 '청년 할당'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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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청년에게 어떤 사회적 지원과 독려가 필요한지 논의하는 게 무의미하진 않다. 문제는 기성세대가 시혜주의에 빠져 청년 자신의 주체적인 도덕적 욕구를 무시했던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오늘날 대다수 청년은 단순히 나에게 할당될 ‘몫’이 얼마인가를 넘어 그 몫을 나누는 ‘규칙’과 그 규칙을 정하는 자의 ‘자격’을 따진다. 그것이 오늘날 청년들이 제기하는 공정성 논란의 핵심이다. 청년 할당제로 특별영입된 인사보다 공개토론 오디션에서 뽑힌 청년대변인에 더 주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논쟁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론의 장’을 여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공정성 논쟁을 주도하는 청년의 욕구는 ‘정치적 욕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이준석 외에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보수 진보 모두 청년 몰이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부 여당을 넘어 진보 진영도 청년이 정치에 기대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 역시 공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제기된 청년들의 정치적·도덕적 욕구를 단순히 물질적 배분의 문제로 치환한다. 아니면 개인의 인정욕구를 채우는 데 급급한 일부 관종 ‘청년 정치 호소인’들의 무리한 돌출행동을 마치 청년 일반을 대변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제 청년이 극혐하는 진보 정치인의 두 유형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청년이 공개 논쟁을 원하는 중요 사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봉쇄하며 어른 흉내 내는 ‘꼰대’ 유형이다. 두 번째는 청년이 관심 있는 갈등적 사안을 공론장에 올려 합의를 도출하는 대신 끊임없이 나에게만 더 많은 몫을 달라는 식의 ‘해줘’ ‘징징이’ 유형이다. ‘위선적 꼰대’와 ‘무능한 징징이’로 가득 찬 정치집단에서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표출된 이준석 신드롬을 넘어설 진보 청년 정치인을 배출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청년 세대론을 꺼낸 『88만원 세대』(2007)의 저자 우석훈이 당시 청년에게 ‘토익책 대신 짱돌을 들라’라고 호소할 때 그가 겨냥한 건 단순히 청년의 물질적 궁핍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 우석훈은 청년이 문제 삼는 게 ‘분배의 몫’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있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십수 년이 지나 이를 복기하면 오늘날 청년들의 ‘불편한’ 정치적 욕망을 애써 외면한 채 겉보기에만 선량한 청년정책을 쏟아내는 정치권의 모습은 확실히 아이러니하다. 청년 당사자의 눈에 위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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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성소수자 권리 옹호를 위한 퀴어축제에 등장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 사진 류호정 의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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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욕망이란 게 별 게 아니다. 청년들이 관심 있는 논쟁적 사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기성 정치는 그걸 억압했으니 선의로 시작한 정책조차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안일한 태도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적·문화적 자원을 누리는 청년들의 ‘문명 속 불만’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현재 청년세대 내부에서 페미니즘, PC주의, 극성 캣맘, 재외동포의 국가 귀속의식, 서브컬처에 대한 검열, 성범죄와 관련한 유죄추정 문제 등에 대한 전방위적 문화전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몇몇 청년을 선심성으로 등용하는 식으로는 청년들의 불만이 누그러질 수 없다.



청년 입 막지 말고 논쟁을 허하라



이런 측면에서 지금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청년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도덕적·정치적 사안에 대한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다. 이준석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갈릴 수 있겠지만, 그가 청년 정치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데는 중요 사안에 대한 공개논쟁을 불사하는 태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논쟁적 미덕’을 갖춘 실력 있는 청년 정치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준석의 반대편에 있는 진보 정치 지지자들도 논쟁이 필요한 사안에 무차별적으로 ‘혐오’ 딱지나 붙이며 논의를 억압하는 게으른 관성에서 탈피해야 제대로 된 진보 청년 정치인을 육성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마치 그러한 합의가 이미 존재하는 척, 청년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 척하며, 기성 좌·우파가 관성적 밀실정치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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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 출연해 논쟁을 벌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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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이준석에 열광하는 일부 청년이 극단적으로 우경화됐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대다수 청년의 본심은 부자와 권력자가 사회 질서를 마음대로 왜곡해도 좋다는 맹목적 시장주의도 싫고, 평등주의로 가장한 연고주의와 정실주의도 싫다는 데 가깝다. 이러한 본심을 누가, 어떻게 제도적 규범으로 ‘번역’할 것인가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열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청년 정치인이 해야 할 역할이 많다.

박가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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