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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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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만 22번 게이머, 포커로 세계 챔피언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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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WSOP)는 시상식에서 챔피언 나라의 국가를 틀어주거든요. 포커 본고장 라스베이거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다니 감동이었죠.”

지난달 1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SOP에서 우승한 홍진호(40)를 최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서 만났다. WSOP는 1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포커 대회다. ‘축구 스타’ 네이마르(브라질)가 지난 6월 참가해 화제가 됐다.

“2인자 트라우마 털어…축의금도 22만원 내”

두 달간 여러 대회가 열리는데, 홍진호가 우승한 대회에는 865명이 각각 참가비 1970달러(약 258만원)를 내고 출전해 사흘간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파이널 테이블, 둘만 남은 헤즈업에서 홍진호는 태국의 푼낫 푼스리를 꺾었다. Q원페어로 승리해 칩 차이를 25배로 늘리더니, 스페이드 플러시(7장 중 무늬가 같은 5장)로 상대를 올인(All in) 시켰다.

홍진호는 우승 팔찌 브레이슬릿과 함께 우승 상금 27만6067달러(약 3억6000만원)를 받았다. 홍진호는 이 대회 3주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윈 서머 클래식’ 메인 이벤트에서도 우승해 상금 69만6011달러(9억900만원)를 챙겼다. 두 대회에서만 상금 12억6000만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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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시절 준우승만 22번 거둔 홍진호에게 2는 상징적인 숫자가 됐다. 사진 홍진호 인스타그램



글로벌 매체 포커뉴스는 “전직 스타 크래프트 선수인 ‘옐로’ 홍진호가 포커 명예의 전당 바운티에서 우승했다”고 소개했다. ‘옐로’는 홍진호의 스타 크래프트 아이디다. 홍진호는 2000년대 컴퓨터 게임 스타 크래프트에서 종족 ‘저그’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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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선수로 변신한 홍진호. 프로게이머로는 만년 2인자에 머물렀던 홍진호는 올해 국제 포커 대회에서 2차례 우승했다. 사진 홍진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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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식 대회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22번을 기록했다. 그래서 ‘2’는 홍진호를 상징하는 숫자가 됐다. 홍진호는 “지인들 축의금도 22만원을 낸다”며 웃었다. 2022년 2월22일에는 프로게이머 라이벌 임요환(42)과 5년 만에 두 선수는 이름을 딴 ‘임진록’을 펼쳤는데 무려 21만 명이 시청했다. 그때도 홍진호는 2번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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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스트레이트 플러시 패를 쥔 홍진호.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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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만년 2인자였던 홍진호는 올해 국제 포커대회에서 2번 우승했다. 홍진호는 “프로게이머 시절 결승만 가면 져서 속상했다. 공군 게임단에 입대해 트라우마를 털어냈다. 지금은 2등을 해도 이슈가 된다. 부담감을 내려 놓고 마음 편하게 하다 보니 우승한 것 같다”며 웃었다.

홍진호는 약 4년 전 포커 선수로 전업했다. 그는 “2011년 29세에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6년 정도 방송에 출연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 은퇴하고 나니 삶이 무료하게 느껴졌다. 게임에서 난 퇴물이었다. 더 늦기 전에 포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앞서 라이벌 임요환이 먼저 포커선수로 전향했다. 홍진호는 “스타 크래프트와 포커는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꽤 많다. 우선 손이 빨라야 한다. 상대 종족과 맵을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포커도 상대와 가위바위보 하듯 극도의 심리전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홍진호는 예능 게임 ‘더 지니어스’는 물론 ‘포커 신들의 전쟁’도 우승할 만큼 머리가 좋다.

“극도의 심리전, 스타 크래프트와 일맥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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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에서 포커선수로 변신한 홍진호(가운데). 사진 홍진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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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홀덤을 줄여 부르는 ‘홀덤’은 대표적인 포커 게임이다. 보통 2~9명이 테이블에 앉아 칩이 소진되면 탈락하는 방식이다. 개인별 손패 2장싹 받아 모든 플레이어가 공유하는 카드 5장으로 족보를 맞춘다. 7장 중 최종 승부를 낼 5장의 카드 조합이 높은 쪽이 승리한다. 바닥에 공통 카드 3장이 깔리는 ‘플랍’, 4번째 공통 카드가 깔리는 ‘턴’, 최종 5번째 공동 카드가 깔리는 ‘리버’까지 베팅은 제한 없이 무한대로 가능하다. 대개 리버까지 오픈하기 전에 승부가 가려진다.

홍진호는 프로게이머 시절 ‘폭풍 저그’라 불릴 만큼 공격적이었다. 홍진호는 “프로게이머 시절엔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 생각했다. 포커에서는 공격적으로 나서면 모든 칩을 잃기 쉽다. 좋은 카드가 나올 때까지 참는 평정심이 요구된다. 동시에 좋은 패를 가진 것처럼 액션을 취해 상대를 죽이는 ‘블러핑(패가 상대방보다 좋지 않을 때, 상대를 기권하게 할 목적으로 거짓으로 강한 베팅이나 레이스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포커는 운이 아니라 100% 실력이 존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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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에도 홀덤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홀덤 펍’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포커를 ‘도박’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홍진호는 “2000년대 초반 프로게이머를 보는 인식과 비슷하다. 명절에 친척들이 직업을 물으면 프로게이머라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e스포츠는 스포츠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해외에서는 포커가 이미 멘털 스포츠로 각광 받고 있고, TV 중계도 한다”고 했다.

홍진호는 또 “게임처럼 포커도 관점과 접근 방식에 따라 도박이 될 수도 있고, 프로페셔널 게임이 될 수도 있다”며 “많은 사람이 도박으로 접근한 뒤 한 번에 ‘올인’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포커 플레이어들은 상대 선수의 성향과 확률을 기반으로 수학적으로 접근한다. 자금 관리(뱅크롤), 룰과 법칙, 참가 기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커 게임은 미국이 강세지만, 최근 한국인들도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홍진호는 “포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길 바란다. 게임이 그랬던 것처럼 포커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하게 됐다”고 했다. 올해 10월엔 아시아 포커대회 APL(아시안 포커 리그)이 한국에서 열린다.

“설마 또 2등을 하는 건 아니겠죠?”라고 농담을 던지자 홍진호는 “아뇨. 앞으로 22번 우승해야죠”라며 씩 웃었다.

■ 홍진호는...

▶홍진호는...

출생: 1982년생(40세)

프로게이머 이력: 2000년대 스타 크래프트 준우승 22회

프로게이머 시절 종족: 저그(‘폭풍저그’ 불릴 만큼 공격적)

포커 플레이어: 2018년 전업

포커 이력: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 우승(상금 3억6천만원), 원 서머 클래식 우승(상금 9억)

예능 이력: ‘더 지니어스’ 우승, ‘포커 신들의 전쟁’ 우승

별명: 콩(발음이 새서 성인 홍을 콩으로 발음해서)

▶홀덤은...

대표적인 포커 게임. 텍사스 홀덤을 줄여 부르는 이름. 보통 2~9명이 테이블에 앉아 칩이 소진되면 탈락

① 개인별 손패 2장씩 받아. 모든 플레이어가 공유하는 카드 5장으로 족보를 맞추는 방식.

② 바닥에 공통 카드 3장이 깔리는 ‘플랍’, 4번째 공통 카드가 깔리는 ‘턴’, 최종 5번째 공동 카드가 깔리는 ‘리버’ 순.

③ 베팅은 무한대로 가능. 참가자가 베팅 안 따라가면 다이

④ 7장 중 최종 승부를 낼 5장의 카드 조합이 높은 쪽이 승리

※원페어(숫자 같은 카드 2장)→투페어(2쌍의 페어)→스트레이트(숫자 이어지는 5장 카드)→플러시(무늬 같은 카드 5장)→풀하우스(스리 오브 더 카인드+원페어)→포커(숫자 카드 같은 4장)→스트레이트 플러시(숫자 이어지고 무늬 같은 카드 5장) 순

영상 출처: 굿폴드홀덤TV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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