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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동서남북] 폭우 속에서 ‘신호’와 ‘소음’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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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 전하는 소셜미디어, 신속하지만 엉터리 정보도 많아

공영방송 비롯한 기존 매체는 옥석 검증해 신뢰 얻어야

조선일보

서울에 폭우가 내린 지난 8일 강남역 인근 도로 한복판에서 침수된 차량 위로 올라가 대피한 시민. /트위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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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일대에 집중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8일 저녁 지인으로부터 모바일 링크를 하나 전송받았다. 서울 지도 위에 CCTV가 빽빽이 표시된 서울시경 종합교통정보센터 사이트. 교통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작대교 부근을 클릭하자 차량 통행이 끊긴 올림픽대로 모습이 비쳤다. 침수 피해가 컸던 강남역 등 일부 CCTV 영상은 통신이 끊겼는지 새까만 화면만 나왔다. 이날 승용차를 이용해 출근한 사람 중 상당수가 이처럼 스스로 정보를 찾아 퇴근 경로를 정했을 것이다.

이날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소셜미디어에서 펼쳐졌다. 트위터에 #지하철 침수 상황 #강남역 #대치동 등을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정보와 사진을 볼 수 있었다. 학원에 간 자녀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지하철 무(無)정차역 정보를 취합한 학부모도 있었다. 지역별 소식 전파가 가능한 당근마켓에는 “해외 출장 중이라 지하 주차장의 차를 옮겨줄 사람을 찾는다”며 동(洞) 단위로 정밀 타깃된 정보까지 올라왔다.

행정조직이나 신문·방송 같은 기존 네트워크는 굼떴다. 이날 밤 11시 무렵 KBS 재난특보에선 “한국전력에 따르면 강남·서초 일대에서 정전 정보가 집중 접수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전’이란 믿을 만한 출처(source)에 기반한 소식이었으나, 이미 그 시간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침수된 강남 아파트 지하 주차장 사진들이 무더기로 올라오고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열심히 알려주던 재난 문자도 잠잠했다. 국민재난안전 포털에 들어가 보니 이날 밤 강남구청발(發) 호우 관련 재난 문자는 9일 0시 20분쯤 올라온 한 건이 전부였다. 평범한 시민인 ‘강남역 슈퍼맨’이 화제가 된 것과 무척 대비됐다.

소셜미디어를 맹신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셜미디어는 검증된 정보와 검증 안 된 정보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날 밤 11시 무렵 한 시간 동안 국내 발생한 트윗 양은 34만 건에 달했다. 우리는 이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모른다. 시민들은 ‘채집(採集)’한 정보의 진위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 통계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네이트 실버는 저서 ‘신호와 소음’에서 “무수한 신호들이 빚어내는 소음들로부터 제대로 된 신호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국내 주요 방송사들이 ‘세월호 학생들 전원 구조’ 자막 오보(誤報)를 낸 것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잘못된 신호를 걸러내지 못해 빚어진 일이었다. 실버는 “음모 이론은 신호 분석의 가장 게으른 형태이며, 복잡한 상황에서 (이해를 위한 인지적) 노동을 절약하고자 고안한 것”(‘신호와 소음’ 더퀘스트, 608쪽)이라고도 했다. 이른바 ‘세월호 음모론’ 등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다.

재난 상황에서 공영방송 같은 주요 매체는 무수한 소음들로부터 신호를 골라 필터링해 전달하는 중개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소셜미디어 활용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나는 시민들의 정보 격차를 해소해주는 공적 책무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음모론이 싹트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이번에도 8일 오후 5시 무렵부터 ‘윤석열 퇴근 6시 vs 11시?’라는 글이 돌아다녔다. ‘폭우에 대통령 퇴근’ 프레임이 먼저 만들어졌고, 대통령실이 걸려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아침 라디오에서 이야깃거리로 소비됐다.

방송이 제대로 된 중개자 역할을 하려면 공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음모론’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김어준 같은 이가 여전히 교통방송 같은 곳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당분간 우리 방송에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신동흔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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