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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北 반감·美 설득 과제… 尹의 ‘담대한 구상’ 실현 가능성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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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송배전·항만·공항 현대화 지원

北 지하자원과 대규모 식량 공급 연계

정치·군사적 상응 조치는 공개 안 해

대통령실 “北 민생개선 조건없이 가능”

北, 尹정부 강력 비판 속 호응 미지수

조선신보 “한반도 전쟁 먹구름 몰고 와”

강제동원 문제 등 첨예 현안 말 아껴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언급도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담은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대통령실은 그간 보수 정부가 ‘선 비핵화’ 또는 북핵 폐기와 경제 지원을 연계한 ‘빅딜’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설 때부터 단계에 맞춰 경제 협력을 제안하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실질적 협력의 전제 조건인 ‘포괄적인 비핵화 합의’ 기준에 대한 한·미와 북한의 이견이 예상되고, 북한이 윤석열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에서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담대한 구상은 남과 북이 비핵화 논의에 착수함과 동시에 가동될 남북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포함한다”며 “우선 말씀드리는 경제 분야 협력 방안과 함께 정치·군사 부문 협력 로드맵도 준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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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북 비핵화 제안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경축사를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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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선 비핵화’와 ‘빅딜’을 강조한 과거 보수 정부와 달리 단계적 조치를 구상한 점에서 역대 보수 정부와 차별화된다. 이명박(MB)정부의 경우 ‘북핵 폐기와 안전 보장, 경제 지원’을 일괄 타결하는 ‘그랜드 바겐’을 북한에 제시한 바 있다.

김 차장은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 과정에서부터 경제 지원 조치를 적극 강구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제안”이라고 평가하며 “광물과 모래, 희토류 같은 북한의 지하자원과 대규모 식량 공급을 연계한 일명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R-FEP·Resources-Food Exchange Program)이나 보건의료, 식수, 위생, 산림 분야 민생 개선 사업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북한 민생 개선을 위한 시범 사업은 비핵화 논의 단계에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북한의 광물 자원은 거의 유엔 제재 대상에 포함돼 있다”며 “식량과 자원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전향적 조치들을 비핵화 협상 과정에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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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5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 내용 중 대북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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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가 도출되고, (핵 시설에 대한) 동결·신고·사찰·폐기 등 단계적 비핵화 조치 수준에 따라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게 윤 정부의 구상이다. 김 차장은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의 사업 목표에 대해선 “인프라 구축, 민생 개선, 경제 발전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사업들이 이행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언급한 △발전소·송배전·항만·공항 현대화(인프라 분야) △농업 생산성 향상·병원의료체계 현대화(민생 개선 분야) △교역 활성화 및 국제 투자·금융 유치(경제 발전 분야) 등이 구체적 방안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의 전제 조건인 ‘포괄적인 비핵화 합의’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북한의 입장차가 클 수밖에 없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북한은 윤 정부 출범 이후 무력 도발 수위를 높이는 등 대남 적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MB정부는 경제적 보상안을 담은 ‘비핵·개방 3000’과 ‘그랜드 바겐’ 제안과 함께 비밀 접촉을 이어갔음에도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경제적 지원 제안은 담대한 구상의 시작으로, 여기에는 경제·군사·정치 3대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계획이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북 안전보장 방안은 공개하지 않았다. 안전보장의 핵심인 정치·군사적 상응조치는 미리 제시할 게 아니라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진정성에 따라 구체적으로 논의·조율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의지를 담은 표현은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유연한 한반도 외교 정책을 통해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한편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윤 정부의 대북 대결, 대미 추종 정책이 조선반도(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북한은 우리 정부의 ‘담대한 계획’에 호응하지 않고 강력 보복을 경고하고 있다”며 “기존의 남북 간 합의를 존중하며 주변국 지지를 끌어내는 대한민국 주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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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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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日은 이웃…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합쳐야 하는 이웃”이라며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강제동원 문제 관련 ‘민간협의회’와 2015년 박근혜정부 시절 맺은 ‘위안부 합의’ 등 양국의 첨예한 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대통령실은 “고위급에서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며 현안 해결을 자신했지만,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인정을 요구하는 발언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일 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해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며 “양국 정부와 국민이 서로 존중하면서 경제, 안보, 사회, 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3687자의 광복절 경축사 중 대일 관계 메시지는 298자의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취임사에서 이어진 관계 개선의 의지를 재차 강조한 수준에 머물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래로 협력하기로 마음먹고 과거 일을 다른 각도로 보면 마음도 열리고 믿음도 가지 않겠는가”라며 “(과거사 관련) 일본 정부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현안도 빠르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호권 광복회장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한·일 관계 개선의 전제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윤 대통령 경축사와 관련해 “어떻게 광복절에 일본과 관계 개선에 대한 얘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말씀은 한마디도 없으신가”라고 지적했다.

이현미·김범수·이창훈·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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