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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팀장 칼럼] 산으로 간 청년 부채와 빚 탕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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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조귀동 금융1팀장.




‘95조1000억원’과 ‘5300억원’. 20대의 금융권 전체 대출(2022년 3월 기준)과 10개 증권사 신용대출(2021년 9월 기준)이다. 자산시장이 활황일 때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가 20대 대출 행태의 주인 것 같지만, 실제 ‘빚투’를 위해 대출이 이뤄진 규모는 20대 대출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관련 자료는 없지만 가상자산용 대출도 별 차이 없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금융위원회가 2021년 말 현재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들을 분석한 결과 전체 이용자의 49%는 보유자산 규모가 100만원 이하였고, 29%는 101~100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20대는 이용자 중 24%만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1회 거래금액은 56만원으로 평균(75만원)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청년층 채무조정 방안이다. 요컨대 주식이나 가상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낸 만 34세 이하 청년들의 빚 탕감을 왜 지원해주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급기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여러 차례 직접 나서서 빚투에서 손실을 본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불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내놓은 새출발기금 등 여러 금융 지원책에도 ‘도덕적 해이 유발 가능성’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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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7월 발표한 만 34세 이하 청년층 대상 채무조정 혜택 도입 근거로 주식, 가상자산 등 자산투자자의 손실 확대를 들었다.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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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대상 채무 조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2013년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이 대표적이다. 국민행복기금은 상환능력이 없는 개인 대상 채권을 금융회사로부터 액면가보다 싼 값에 사들이고, 원금 일부를 탕감해주되 최대 10년간 분할상환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도덕적 해이 우려가 나왔지만, 실직이나 폐업 등으로 갚을 능력을 잃은 이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보다 성실하게 원금 일부를 갚게 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민간 금융회사의 소멸시효완성채권과 장기연체채권 21조7000억원어치를 한꺼번에 소각했다. 그 가운데 16조1000억원은 추심활동이 정지된 금융공공기관 보유 채권이었다. 금융회사들이 어느 정도 부담을 지지만, 신용활동이 불가능했던 채무자들의 재기를 도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원 대상이나 규모, 방식 면에서 논란이 되기 어려운 것이 이번에 발표된 청년층 채무조정 방안이다.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개인 워크아웃) 제도에서 만 34세 이하 대상으로 30~50% 정도 이자 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3년 이하 동안 가능한 원금 상환 유예 기간 중 연 3.25%의 낮은 이자율을 적용키로 했다. 적용 기한은 1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이어 물가 상승·금리 급등·수요 위축의 복합위기 속에서 나가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청년층 채무 조정 정책이 거센 역풍을 맞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대통령실과 금융위원회에 있다.

금융위는 “주식, 가상자산 등 청년 자산투자자의 투자손실 확대”를 채무조정 정책 도입이 필요한 이유로 거론했다. 많은 청년이 저금리 환경에서 재산 형성수단으로 저축 대신 돈을 빌려 주식‧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는데, 최근 금리상승 여파로 자산가격이 급속히 조정되면서 상당수 자산투자자가 투자실패 등으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논리였다. 정부에서 명시적으로 해당 정책이 ‘빚투’ 실패에 대한 구제책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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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와 같은 내용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현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하다 보니 들어갔다”고 말했다. 또 “그 표현이 도덕적 해이 논란을 촉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책 발표 당시 김 위원장은 “부채 상환이 어려운 분들을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고 부탁드린다”며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청년들의 금융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초저금리 국면의 결과다.

한국은행은 2021년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근 청년층의 가계대출 현황 및 평가’ 분석을 실었다. 한은은 청년층 부채 증가 원인으로 전·월세 자금 대출 증가, 30대 주택 매입 수요 확대, 주식 투자자금 증가, 비대면 신용대출 확대 등을 꼽았다.

특히 상당수는 임차보증금이나 주택 매입 때문에 발생한 빚이다. 2021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의 30대 이하 가구 금융부채 중 66.6%에 해당된다. 13.4%를 차지하는 신용대출도 20대는 55.9%가, 30대는 42.4%가 주택 임차나 매입을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지난해 채무 조정 특례를 받은 청년들의 연체 발생 사유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생계비 지출 증가’가 30.0%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실직(21.3%), 금융비용 증가(12.9%), 근로소득 감소(12.7%) 순이었다. 코로나19 등에 따른 일자리 및 소득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었던 셈이다.

신용불량자이거나 부채가 과다한 청년 49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광주청년드림은행이 상담한 결과에 따르면, 빚 이외에 ‘통신 요금 연체’로 어려움을 겪어 상담을 신청한 이들이 109명(22.2%)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이 일자리(20.3%)와 불법금융피해(13.0%)였다. 금융 취약 계층 다수가 소득과 일자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빚 문제로 불법 금융 사기 피해를 받거나 이동통신 등 기본적인 인프라 사용을 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다중 채무자나 금융 취약 계층도 상황은 비슷하다. 청년이라고 다른 사정이 있던 건 아닌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들은 유독 주식이나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가 빚을 졌다는 식으로만 언급된다.

청년의 빚은 대단히 이질적이다. 30대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을 정도로 잔뜩 빚을 진다는 의미)’을 통해 집을 구매하는 게 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여유가 있고 자산을 축적할 시간이 있었던 일부의 사정일 뿐이다.

2020년 주거실태조사 마이크로데이터로 1세 연령별 자가 거주 비율은 1982년생(당시 38세) 52.0%를 정점으로 급락해 각각 1989년생(31세) 26.1%, 1990년생(30세) 14.4%에 불과하다. 대신 월세 거주비율은 1982년생 18.9%에서 1990년생 42.8%로 뛴다. 생활비가 필요해 대출을 받는 실직자와 주택을 구매하는 고소득자를 한꺼번에 묶어 ‘청년’이라고 규정하는 셈이다.

청년 채무 조정 제도가 유독 논란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가 ‘청년’이라 호명하는 대상이 협소하고, 왜곡돼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로 여유가 있는 계층의 청년을 주된 수혜 대상으로 거론한다. 정책을 평가하는 시민은 청년을 뭉뚱그려 무분별하게 빚투에 나섰을 것으로 규정한다.

실제로 과다한 빚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은 소득이 낮고, 좀처럼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임에도 그들의 처지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 대 ‘성실하지 못해 빚에 허덕이는 그들’의 정치적 담론 구조가 만들어지면, 결국 취약 계층을 위한 전통적인 채무 조정 정책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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