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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992년 가을, 모두 염종석을 말할 때 나는 송진우를 보았다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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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롯데 자이언츠. 당시 롯데는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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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30년 전 롯데가 마지막 우승을 했던 그때, 나는 더벅머리 여고생이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시절 나는 혼자만의 굴을 열심히 파는 스타일이었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어느 타이밍에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요즘 말로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아이였다. 그래서 친구도 극히 적었다. 같은 반 또래들은 나를 공부만 하는, 말도 그다지 많지 않던 조용한 그런 아이로 기억한다.

부산이 고향인 나에게 롯데 자이언츠를 향한 팬심은 기본값에 가깝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수 이름과 최근 성적은 잘 몰라도 롯데가 현재 몇 등인지, 가을 야구에 진출할 수 있을지 여부 등은 궁금해한다. 서너 시간 이어지는 야구 중계를 끈기있게 볼 만큼 힘이 넘치지 않는 지금도 우연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발견(?)하는 롯데 경기는 자연스레 순간 멈춤 기능을 한다.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 잔잔하던 나의 삶에 큰 파고가 몰아닥친 때가 있었다. 롯데와 빙그레 이글스(현재 한화 이글스)가 우승을 다투던 해(1992년)였다. 롯데를 응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빙그레에는 송진우 선수가 있었다. 당시 나는 송진우 선수도 좋아했다. 성적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강한 끌림이 있었다. 태생적으로 진지함이 가득한 나는 진지함이 묻어나는 사람에게 큰 호감을 느끼는데 송진우 선수도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와 빙그레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으니 어땠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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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송진우. 연합뉴스


당시 야간 자율학습으로 늘 밤 9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던 우리에게도 한국시리즈는 큰 관심사였다. 반 친구들은 모두 흡사 전문가라도 된 듯 온종일 야구 얘기를 쏟아냈다. 나는 이런 친구들의 모습을 힐끗힐끗 훔쳐보면서 마음속으로 ‘그게 아닌데’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 시절 나는 ‘야구 지식은 내가 한 수 위’라는 허세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은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지조차 몰랐다.

인터넷 중계도 없고, 소셜 미디어도 없던 그때, 우리는 한 달 남짓 야구에 미쳐 있었다. 나 또한 아이들과 조금씩 ‘야구’, ‘롯데’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자연스레 안면을 트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겼다. 새로운 학년이 되고 열 달 남짓 지난 시기에 비로소 나를 조금씩 밖으로 드러냈다.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라디오로 한국시리즈 중계를 들으며 흥분하던 친구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일희일비했다. 눈은 책상 위 참고서에 고정돼 있었지만 머리로는 ‘빨리 집에 가서 야구 뉴스를 봐야 하는데’라면서 속을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롯데가 이겼으면 좋겠지만 송진우 선수는 승리투수가 되었으면 하는 모순된 감정에 번뇌하기도 했다.

몇 개월 뒤면 고3 수험생이 된다는 불안과 무게감이 나를 ‘슈퍼 진지맨’으로 만들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롯데가 우승에 다가가는 그 순간만큼은 그냥 내 감정에 아주 솔직해졌다. ‘너무 무게잡지 않아도 되는구나’, ‘아이들과 마음껏 떠들어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그냥 표현해도 괜찮구나’ 하는 진한 해방감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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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방어율왕을 차지한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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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 하나, 송진우 선수에 대한 호감을 바깥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롯데 안경 에이스) 염종석 선수가 아닌 다른 선수를 얘기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고를 갓 졸업한 스무살의 염종석은 야구에 관심 없던 부산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스타였다. 염종석과의 결혼을 상상하는 여고생이 넘쳐나던 그런 때였다. 그게 벌써 30년 전 일이다.

나에게는 지금 키움 히어로즈를 좋아하는 조카가 있다. 특히 이정후의 팬이다. 키움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반을 나름 꿰뚫고 있는 조카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20대 초반의 조카는 대학을 2년째 휴학 중이고, 새롭게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 분명한 시절을 버텨내고 있다. 그런 조카에게 야구는 스트레스 해방구가 되고 있음이 자명하다. 학창 시절 내가 그랬듯이.

마지막으로 30년 전, 롯데와 빙그레 사이에서 고뇌(?)하던 여학생에게 응원의 말을 보낸다. “괜찮아, 넌 지금 엄청 재미난 인생 연습을 하고 있어!”

아참! 롯데가 다시 가을 야구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망설임 없이 마음껏 응원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김정옥(부산 수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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