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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동물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던 문어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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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의 신스틸러 ‘우술라’ 열연한 배우 최근 별세

현실속 문어도 카리스마 넘치는 밤의 사냥꾼

죽을 때까지 알 돌보는 눈물겨운 모성애

비닐팩에 꽁꽁 싸여 마트 진열대에 올라있는 검붉은 문어의 조각난 몸통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 영험하고 신성한 존재를 이렇게 씹어 삼켜도 되는 것인가. 숨진 문어의 넋들이 구천 위를 떠돌면서 자신들의 육체가 한낱 미물 인간에게 배설·소화되는 장면을 피울음을 울며 바라보는 건 아닌가 싶은거죠. 그만큼 문어는 지혜롭고 똑똑하고 현명하고 영리한 동물로 인식됩니다. 비록 오징어·달팽이·조개와 같은 연체동물이지만, 지능적 행동면에서 ‘급’이 다르다고들 인식돼왔지요. 이렇게 문어를 단순한 해산물 이상으로 우러르게 만든 캐릭터 중에 빼놓을 수 없는게 만화영화 인어공주의 신스틸러인 문어 마녀 ‘우술라’입니다. 월트디즈니의 제2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효녀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만화영화에서 용왕 트리톤의 딸인 주인공 에이리얼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우술라의 열연은 작품 흥행의 한 축입니다.

우술라는 지금 대중문화의 핵심 코드가 된 빌런(악당)의 전성기를 연 주역이기도 하죠. 풍만하고 퉁퉁한 몸집과 두턱, 아니 세턱진 얼굴로도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캐릭터죠. 용궁 생활에 싫증을 내고 사람 세계에 급호감을 가진 인어 에이리얼을 꼬드기면서 부르는 노래 ‘가련하고 지지리도 복도 없는 넋이여(Poor Unfortunate Soul)’를 열찰할 때 혼을 다해 뿜어내는 귀기어린 카리스마에 브라운관 바깥에서도 넋이 빨려들어갈 정도입니다. 살집 가득 치명적 매력을 가진 이 팜므파탈 문어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베테랑 배우 팻 캐럴(95)이 최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 우술라의 카리스마 쩡쩡 넘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뜻이죠.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 매력을 가졌던 문어 우술라, 그를 연기했던 노배우를 추모하면서 오늘은 문어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조선일보

빛깔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문어의 모습./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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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는 오징어와 함께 연체동물중에서 가장 진화한 종류로 분류됩니다. 지난번에 미국에 출몰한 거대달팽이 이야기를 했을 때, 달팽이는 배에 발이 달려서 복족류라고 했었죠. 그에 비해 문어와 오징어는 두족류라고 합니다. 머리와 발이 한 덩어리나 다름없는 모양새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흐물흐물한 모습이지만 몸의 구성은 아주 체계적입니다. 머리에 달린 입 주위로 오징어보다 두 개 적은 여덟개의 발이 있고 입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주로 여덟개의 발이 달린 몸을 활용해서 바다 밑바닥을 기어다니는데, 곧잘 헤엄도 쳐요. 오징어와 마찬가지로 배출구에서 힘차게 물을 내뿜으며 추진력을 얻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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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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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와 마찬가지로 문어 역시 휘황찬란하게 몸 색깔을 바꾸는 패셔니스타입니다. 회색·갈색·분홍·파랑 등의 빛깔로 변신이 가능하죠. 이렇게 몸 색깔을 바꾸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달아나려는 몸부림의 일환이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통신 수단으로 기능한다고 합니다. 문어는 빛에 가까운 속도로 자기 몸색깔을 바꿀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몸을 위장해요. 살갖에 주름을 만들어 쭈글쭈글하게 함으로써 주변의 상태와 비슷해지는 것이죠. 주로 어두운 밤이 되면 바위틈에서 기어나와 물고기와 갑각류, 혹은 자신과 같은 연체동물인 조개들을 사냥해서 먹습니다. 문어를 문어답게 하는 특징 중 하나가 여덟 다리에 골고루 붙어있는 빨판입니다. 이 빨판은 일종의 이빨 역할도 합니다. 사냥감으로 잡은 조개껍질을 강제로 열어젖힐 때 요긴하게 쓰는거죠. 이처럼 바다동물들을 공포에 떨게하는 밤의 사냥꾼, 우술라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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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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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와 오징어는 두 말할 나위 없는 연체동물계의 양대문파이자 라이벌입니다. 길쭉길쭉한 몸으로 로켓처럼 바다속을 헤엄치는 오징어가 동적인 이미지라면, 흐물흐물하고 둥글둥글한 주로 몸체로 바닥을 기어다니는 문어는 다소 정적이죠. 오징어파에 현존하는 최대의 무척추동물로 알려진 대왕오징어(몸길이 최대 15m)가 있는 반면, 문어파의 왕대장은 최대 몸길이 9m에 몸무게는 272㎏까지 나가는 태평양자이언트문어입니다. 물고기와 갑각류는물론 어지간한 물새와 상어까지 먹어치울 정도입니다. 수족관에서 태평양자이언트문어가 무기인 빨판을 활용해 어린 상어를 사냥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튜브 동영상입니다.

문어를 영험한 동물이라고 감히 말하게 되는 까닭 중 하나는 눈물겨운 모성애입니다. 인간 말고도 모성본능을 발휘하는 짐승들은 많지만, 문어의 번식은 지켜보기에 참 극적이거든요. 대다수 문어들은 일생에 한 번만 번식을 합니다. 그래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문어의 산란에 대해 ‘끝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end)’라는 시적인 표현을 끌어왔어요. 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바위 벽에 마리당 수십만개의 알을 낳아놓습니다. 마치 아주 길쭉한 신형 포도종자, 거꾸로 자라는 벼같아요. 인어공주 주제가 ‘바다 아래서(Under The Sea)’ 음악에 맞춰서 편집된 Kritter Klub 유튜브 동영상입니다. 음악 덕에 경쾌한 분위기지만, 이 동영상 속 어미는 혼신을 다해서 새끼들을 바깥 세상으로 내보낸뒤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암컷은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알이 오염돼서 썩지 않도록 계속 신선한 물을 뿜어주고 먼지를 털어줍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바쳐 새끼들을 돌보는 암컷의 죽음과 손톱끝보다 더 작은 알껍질을 깨고 나와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새끼들의 삶이 교차합니다. 이 귀여운 아기 문어들은 바다에서 용케 살아남으면 어미와 아비의 뒤를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물에 잡혀서 문어 숙회가 돼 마트 진열대에, 식당 테이블에 오르겠죠. 이 또한 이들의 숙명이며 삶의 순환입니다. 문어 숙회를 초장에 찍을 때 한 번쯤은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문어들의 삶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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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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