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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 진관사에서 ‘6분 숙면’한 애국지사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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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사업단-보훈처, 15일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템플스테이’ 열어

조선일보

15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진관사 한문화체험관에서 누워서 참선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참가자들은 이내 코를 골며 숙면에 들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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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강원도 홍천의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란 이야기 하지 마라. 반골(反骨)로 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독립운동가 집안 후손들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진관사는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의 고향과 같은 곳이니 여러분들도 마음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식사와 명상을 하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주세요.”

광복절이던 1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사 입구 한문화체험관. 진관사 회주 계호 스님은 ‘특별한 손님들’에게 이렇게 환영인사를 했습니다. 이날 진관사를 찾은 이들은 미국과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20여명이었습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원경 스님)과 국가보훈처 그리고 진관사가 공동으로 마련한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당일형 템플스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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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대웅전 앞마당에서 본 진관사 전경. 사찰 뒤로 북한산이 펼쳐져 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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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이 사랑하는 사찰, 3.1운동 당시 태극기 발견되기도

진관사는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를 비롯한 국내외 명사들이 사랑하는 사찰로 유명하지요. 진관사는 서울 도심에서 1시간 거리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은 수려한 풍광에 더해 비구니 스님 20명이 정성을 다해 가꾼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사찰음식 명가로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진관사를 찾은 것은 이곳이 독립운동의 요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찰에서는 지난 2009년 붕괴 직전의 칠성각을 해체수리하던 중 3·1운동 당시의 태극기가 90년만에 발견됐습니다. 일장기의 붉은 원 위에 태극을 덧칠하고 건곤감리를 그려넣은 태극기입니다. 태극기를 감싼 보자기 안에서 함께 발견된 1919년 발행된 ‘신대한’ ‘독립신문’ 등 신문을 통해 1919년 3·1운동 당시 사용한 태극기라는 것을 알게 됐지요. 연구 결과 이 태극기는 진관사를 근거지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백초월(1878~1944) 스님이 숨긴 것으로 알려졌지요. 한쪽 귀퉁이가 불에 탄 모습으로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이 태극기는 작년에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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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진관사 회주 계호 스님(앞줄 왼쪽 앉은 이), 주지 법해 스님(앞줄 오른쪽 앉은 이)과 함께 '진관사 태극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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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카자흐 거주 애국지사 후손들에 풍경, 역사, 힐링 선물

매년 해외 거주 독립운동가 후손을 초청하는 보훈처가 올해 진관사를 방문지로 선택한 것도 이때문입니다. 후손들은 8월 12~18일 국립현충원, 독립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비무장지대 등을 방문하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 이날 광복절 기념식 참석 후 진관사를 찾았습니다. 보훈처 권윤숙 주무관은 “국외 거주 후손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장소를 물색하다가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 문화 그리고 독립운동과의 관련성 때문에 진관사를 방문지로 선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진관사는 후손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 공부와 함께 다도(茶道)와 명상을 통해 힐링을 선물했습니다. 진행을 맡은 진관사 템플스테이 국장 선우 스님은 다도를 설명하며 유머 속의 지혜를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차를 마실 때 맛이 좋으면 미소를 지으며 ‘차 맛이 참 좋습니다’라고 말하세요. 차 맛이 떫을 땐 어떻게 할까요? 역시 미소를 지으며 ‘차 맛이 참 진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그러면 물을 좀더 타서 묽게 만들어 드릴 겁니다. 싱거울 땐? 역시 웃으며 ‘차 맛이 참 맑습니다’ 하세요. 그러면 차를 좀더 진하게 만들어 드릴 겁니다. 왜 어떤 경우에도 웃으라고 할까요? 이미 나는 차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인상 찌푸리면 주름은 누구 얼굴에 생기지요?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인상 쓰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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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진관사 경내를 걷고 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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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미소지어야 하는 이유? 나를 위해서”

이어서 명상 체험시간엔 책상다리로 앉는 좌선(坐禪)과 방바닥에 누워서 참선하는 와선(臥禪)이 이어졌습니다. 참석자들이 바닥에 눕자 스님은 “어제 일이 후회된다면, 그 어제는 오늘을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며 어제 일은 바람처럼 물처럼 보내주세요. 내일이 걱정된다면, 오늘처럼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세요”라며 등과 맞닿은 ‘지구와 감촉’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와선은 6분 정도 진행됐는데 누운 지 1분도 안 돼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도와 명상을 마친 참가자들은 선우 스님의 안내로 진관사 순례에 나섰습니다. 선우 스님은 걸을 때에도 “‘발을 든다, 내린다, 누른다’는 생각을 잊지 말고 걸어보라”고 권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를 시시각각 관찰해보라는 뜻이었지요. 10여분 남짓 걸어 진관사에 도착한 일행은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 앞에 섰습니다. 칠성각은 대웅전 오른쪽의 정말 작은 전각입니다. 6·25전쟁 중 진관사 건물은 대부분 불탔으나 칠성각을 비롯한 3채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 전각에서 3·1운동 태극기가 발견됐으니 기적적인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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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태극기가 발견된 진관사 칠성각 앞에서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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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정도의 짧은 체험을 마친 참가자들은 평안한 표정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참가자들은 녹음하고 사진을 촬영하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습니다. 행사 후 주지 법해 스님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이도 많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개인적으로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요. 법해 스님은 행사를 마친 후 “해외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한국의 혼(魂)을 선물한 기분”이라며 기뻐했습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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