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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배신과 죽음의 고통[이은화의 미술시간]〈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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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조반니 벨리니 ‘동산에서의 고통’, 1458∼14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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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에게 고통과 고뇌는 필수다. 선택과 결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로마 지배하에서 가장 억압받고 차별받던 유대인 민중의 메시아 운동을 이끌던 지도자였다. 그는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고뇌에 찬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성서에 나오는 이 장면은 기독교 미술의 인기 주제였고, 16세기 베네치아파의 창시자 조반니 벨리니도 이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화면 속 예수는 황량한 돌산에 올라 무릎을 꿇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슬퍼하면서. 강 건너에는 제자 중 한 명인 유다가 로마 병사들을 이끌고 예수를 체포하러 오고 있다. 반면 아래에서 망을 보던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다. 스승이 기도하는 동안 깨어 있으라고 했지만, 육신의 피곤을 이기지 못한 듯하다. 한 사람은 누워서 완전히 곯아떨어졌고 두 사람은 앉아서 졸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 최후의 만찬에서 스승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이다. 예수를 위로하는 건 먹구름 위에 나타난 천사뿐이다.

벨리니는 기법과 주제 표현에서 실험적인 선구자였다. 달걀을 용매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템페라 대신 유화물감을 실험했고, 엄숙한 종교화를 목가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색채도 풍부하고 매혹적이다. 새벽하늘의 복숭앗빛이 예수와 두 제자의 분홍색 튜닉과 어우러지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신비한 분위기를 만든다. 벨리니는 평생 하늘빛의 변화를 연구해 자신만의 화법으로 발전시켰는데, 실제로도 이 그림은 이탈리아 미술에서 새벽빛을 묘사한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가 사용한 감미로운 분홍색은 훗날 복숭아 스파클링 와인 ‘벨리니’를 탄생시켰다.

신의 아들이었지만 예수의 삶은 핑크빛과 거리가 멀었다. 화가는 제자의 배신과 다가올 죽음 앞에서 번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를 묘사하고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예수는 십자가형의 죽음과 제자의 배신 사이에서 과연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웠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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