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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尹 ‘집값안정’ 자평에 이준구 서울대 교수 “무슨 일을 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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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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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집값·전셋값 안정’을 성과로 내세운 데 대해,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1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최근의 주택가격 급등세의 진정은 시장이 정점을 찍었고 금리 상승까지 일어나 생긴 결과일 뿐”이라며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게 뻔한데 이걸 자신의 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새 정부는)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 국민들의 주거 불안이 없도록 수요 공급을 왜곡시키는 각종 규제를 합리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 복지 강화에 노력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그런 뜬금없기 짝이 없는 자랑을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이 정부가 해온 언동은 집값과 전셋값 안정과는 반대되는 방향 아니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와 투기 억제책 완화 등을 예로 들었다.

이 교수는 “늘 말하는 것이지만 투기 수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는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많다”며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 후반기 3년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상 초유의 주택가격 상승이 일어났고 그 결과 정권까지 잃게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주택시장의 사이클도 언제나 정점에 머물 수는 없고 주택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꺼질 줄 모르고 불붙던 투기수요도 주춤하게 되는 법”이라며 “내 생각으로는 윤 대통령의 취임 직전이 바로 정점에서 내려와 아래쪽으로 하락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MB정부 초기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고, 따라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택가격이 주춤하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더군다나 이번에는 급격한 금리 상승까지 일어나 갭투자를 통한 주택투기가 더 이상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게 되는 상황 변화까지 일어났다. 이 금리 상승은 윤석열 정부가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취한 조처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정부가 제일 능사로 하는 일은 ‘MB정부 따라하기’”라며 “부자감세며 부동산 규제 완화 등 MB정부가 했던 일을 그대로 따라만 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최근 주택가격 폭등의 연원은 바로 MB·박근혜 정부의 주택투기 조장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부동산 경기가 조금 식어가는 기세가 보이자 MB정부는 곧바로 투기억제를 위한 각종 규제들을 완화해 가기 시작했다”며 “긴 안목에서 보면 주택가격 하락을 어느 정도 지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근시안적 대응을 했다. MB정부에 이은 박근혜 정부도 주택 투기를 부추기는 기조로 일관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정책은 시차를 두고 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주택 가격이 크게 뛰어오르지 않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주택 투기가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는데, 불행히도 취임 초기에 그 불을 끄는데 실패해 오늘의 비극을 불러왔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안고 있는 비극의 핵심은 이와 같은 냉탕-온탕 정책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며 “우리 정치인들이 조금만 더 긴 안목으로 일관성 있는 주택시장 정책을 펴왔다면 이런 비극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몹시 아쉽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MB정부가 했던 것처럼 주택투기를 조장하는 기조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주택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세를 보이면 다시 주택시장을 부양하려는 근시안적 충동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또 다시 악순환의 새로운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고,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주거비용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통은 참기 힘든 수준까지 극심해질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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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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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서둘러 집행하는 등 실책이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2018년 7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기적적인 경제활성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을 줘 경제 전반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고 했다. 그는 다만 “경제가 겪고 있는 몇 가지 문제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2018년 12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는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너무 서둘렀고 그 결과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점은 인정한다”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근로시간 제한 같은 조치에 대해 시장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실책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든 점이 있었다”며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가져온 부작용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은 흔쾌히 고쳐야 한다”고도 했다. 다만 “(경제) 위기의 본질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라며 “본질적 측면을 무시하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만 몰매를 가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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