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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조선후기에 만든 지구본 모양 ‘휴대용 해시계’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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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환수 ‘일영원구’ 19일 공개

문화재청, 3월 美경매 통해 매입

반구 형태 아닌 ‘구형’ 최초 확인

헤럴드경제

18일 공개된 조선시대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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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제작된 지구본 모양의 휴대용 해시계가 국내로 돌아와 첫 공개됐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희귀유물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3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휴대 가능한 소형 해시계인 ‘일영원구(日影圓球)’를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18일 밝혔다.

일영원구는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형(球形)의 휴대용 해시계라는 점, ▷전통 과학기술의 계승·발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 ▷명문과 낙관을 통해 제작자와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과학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가 반구(半球) 형태인 데 비해 ‘일영원구’는 둥근 공 모양이다. 구의 지름은 11.2cm, 전체 높이는 23.8cm로 휴대가 가능한 크기다.

문화재청은 “시간을 확인하는 영침(影針·그림자 침)이 고정돼 있어 한 지역에서만 측정할 수 있었던 앙부일구와 달리 일영원구는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제작돼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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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正午) 표시 아래에 둥근 구멍인 시보창이 뚫려 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쪽의 반구를 움직이면, 이 창에 12지의 시간 표시가 나타난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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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검토에 따르면 일영원구를 사용할 때는 먼저 추를 달아 늘어뜨린 다림줄로 수평을 맞춘 뒤, 나침반으로 방위를 측정해 북쪽을 향하게 하고 위도를 조정한다. 길쭉하게 생긴 ‘T’ 자형 횡량(橫粱)과 태양이 일직선이 되는 순간 그림자가 횡량 아래에 파인 틈으로 들어가는데 이를 통해 시간과 각(刻·15분)을 확인하는 식이다. 한쪽 반구에는 12가지 동물로 이뤄진 십이지(十二支) 표시와 96칸의 세로 선이 있는데, 이는 하루를 12시 96각으로 표기한 조선 후기의 시각 법을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봤다.

문화재청은 “국보로 지정된 ‘자격루’와 ‘혼천시계’에서도 십이지로 시간을 나타내는 장치를 둔 것으로 미뤄보아 조선의 과학기술을 계승하는 한편, 외국과의 교류가 증가하던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이 고안된 유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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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형태로 제작된 받침에는 항해 중인 선박과 용(龍), 일월(日月)이 상감되어 있어 금속공예 등 다방면의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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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과학 유물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일영원구에는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했다’는 명문과 함께 ‘상직현 인(尙稷鉉 印)’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어 1890년 7월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만들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상직현은 고종 당시 무관으로 주로 총어영 별장에 임명돼 국왕의 호위 등을 담당했다.

일영원구의 국외 반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장자이던 일본 주둔 미군장교의 사망 이후 유족으로부터 유물을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작년 말 해당 유물의 경매 출품 정보를 입수한 후 자료 조사와 문헌 검토 등을 거쳐 지 3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영원구’는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을 통해 19일부터 일반에 공개되며,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구·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범자 기자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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