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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소쿠리투표 자료 못준다" 선관위, 감사원 요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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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감사원의 직무감찰 자료요청을 거부했다. 사진은 지난달 4일 선거자문위원회의에서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가운데)과 위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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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대선 당시 ‘소쿠리 투표 논란’을 부른 확진자 사전투표 관리 부실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의 선거업무 자료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는 지난 12일 감사원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로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중앙선관위원장 명의 정식 공문으로 전했다. 감사원의 회계 감사는 받되 선관위의 선거와 관련한 직무 감찰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선관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과거에도 직무감찰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번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며 “대선 관리 잘못은 통감하지만, 자료 요구와 관계자 조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선관위에 대한 예비 감사를 진행해왔던 감사원은 공식 대응은 자제하면서도 내부적으론 자료 제출거부에 대한 고발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감사원은 지난 4월 선관위가 ‘소쿠리 투표’와 관련해 자체적으로 진상 조사를 해 발간한 '중앙선관위 선거관리 혁신위원회 보고서'를 토대로 대선 업무 자료를 광범위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선관위의 관련 보고서엔 사전투표의 부실 대응의 실상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이런 자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대선 준비와 관련한 각종 보고 문건과 선거 관리 실태 및 관계자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감사원은 선관위가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와 달리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감사에선 회계뿐 아니라 선거 관리 사무 전반에 대해 신속하고 강도 높은 감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직무 감찰을 두고 두 헌법 기관의 충돌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3월부터 시작된 선관위와 감사원의 갈등



양측의 갈등은 지난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시작됐다. 감사원이 인수위에 국민적 공분을 낳은 선관위의 대선 관리 부실 의혹에 대한 직무 감찰 계획을 보고한 것이 발단이었다. 인수위에서 이를 언론에 공개하자 선관위는 "선관위 직무수행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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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대선 사전투표 당시 선관위가 준비한 확진자용 투표용지 수거박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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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이 '직무 감찰'을 두고 충돌하는 건 현행 감사원법의 모호한 조항 때문이다. 헌법 제97조는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행정기관 및 그 공무원의 직무'라고 한정해 헌법기관은 예외를 두고 있다. 그런데 감사원법 24조 3항엔 직무감찰의 제외 대상엔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만 명시돼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제외 대상에서 빠져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원은 감사원법을, 선관위는 헌법을 들며 감찰 범위를 다르게 해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관위는 감사원의 자료 요구를 거부하며 "현행 감사원법에 선관위가 직무감찰 제외 대상에서 빠진 건 입법 미비 때문"이란 입장도 전했다고 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선 조응천 의원 등이 감사원의 직무감찰 범위에 선관위 소속 공무원을 제외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반면 여당에선 선관위에 대한 철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관위가 이제 와서 중립성 침해를 이유로 감사원 감사에 반발한들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선관위는 선거 관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의 소중한 주권을 소쿠리와 쓰레기봉투, 라면 박스에 담았다"고 비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자체 혁신위 보고서를 통해 문제를 진단했고, 독립적이 감찰조직 신설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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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왼쪽, 사진)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감사원 국회 업무보고에 출석했던 유 사무총장과 박범계 민주당 의원의 모습. MBC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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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고발, 선관위는 권한쟁의 심판 청구 가능성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엔 공감한다"면서도 "대선 관리 부실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문제로 이번 사안에 한해선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한 고발조치를 밀어붙이면 선관위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감사원법의 모호한 조항을 둘러싸고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선관위 측에선 감사원의 감찰이 선관위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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