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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美교관이 훈련시킨 우크라군 신병, 10일 만에 '전사'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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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본격 탈환전 앞두고 대거 징집한 신병
자원한 외국인 예비역 교관들이 훈련중
뉴시스

[런던=AP/뉴시스] 우크라이나 의용군 지원병들이 15일(현지시간) 영국 남부의 한 군사 기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영국 국방부와 육군은 영국에서 우크라이나 신병들을 훈련하고 있다.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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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점령지 탈환 작전을 앞두고 병력을 대대적으로 보충하면서 이들을 훈련하는데 미국의 예비역 군인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피로에 지친 우크라이나 해병대 신병들이 잔디밭에 털썩 엎드린 뒤 소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한 사람씩 총을 쏘기 시작하자 미국인 훈련 교관이 "사격 중지"라고 소리쳤다. 미 콜로라도주에서 경찰관으로 은퇴한 스티븐 톰벌린이 큰 소리로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절대로 아무 것도 하면 안돼"라고 단속했다. 사격 명령이 떨어졌으나 표적을 맞추는 총알은 거의 없었다.

우크라이나 해병 대대 부대대장인 안톤 솔로훕 선임중위가 "이들 대부분 막 징집된 사람들이다. 어제까지 전기기술자, 트랙터 운전사였고 무기를 잡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부대가 진행하는 훈련은 미 예비역 군인들이 담당하고 있다. 솔로훕 중위는 "교관들이 10일만 주면 이들을 특수부대원으로 바꿔놓겠다고 장담했다. 두고 봅시다"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사상자가 많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양국 군대는 병력 손실이 엄청나다. 수십만명을 징집해 전선에 투입해온 우크라이나로선 이들을 전사로 훈련하는 것이 큰 과제다. 본격적인 탈환작전을 앞두고 있기에 훈련에 할애할 시간도 부족하다.

경험 많은 군인들은 모두 최전선에서 전투에 참가한 상황에서 잘 훈련된 교관을 확보하는 것이 큰 과제이기도 하다. 영국, 미국, 캐나다의 현역 군인들이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키다가 지난 2월24일 전쟁이 터진 뒤 철수했다. 영국에서 진행중인 신병 훈련은 큰 규모로 진행하기가 불가능하다.

톰벌린 교관이 우크라이나 신병 훈련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민병대 훈련을 담당했었다.

전쟁 초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도와 싸울 사람들을 환영한다고 발표하자 수천명의 서방 시민들이 달려갔고 국제 연대에 소속된 사람들은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자원자들중 톰벌린처럼 경험이 많은 고령자들은 훈련에 나섰다. 지금까지 270여명을 훈련시켰다는 톰벌린은 "우리의 훈련이 큰 인기를 끈다. 이곳 신병들은 우크라이나 육군 75%보다 더 나은 전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톰벌린이 일하는 훈련장은 이동공격훈련그룹(MATG)이라는 부대 소속이다. 10여명의 미국인과 영국인 몇 사람, 캐나다인과 이스라엘인들이 우크라이나인 통역 및 지원 부대원과 함께 훈련을 진행한다. 이들 모두 지역적 연고와 파괴 참상에 대한 분노 등 갖가지 이유로 매일 포격을 당하는 미콜라이우로 온 사람들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금지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을 돕는 사람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예비역 미 해병 브라이언 벤틀리(29)도 디트로이트 경찰학교에 지원하려던 생각을 접고 이곳에 왔다. 그는 "이곳 신병들은 평생 가장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군에게 훈련장은 최우선 공격 표적이다. MATG 부대장인 미 육군 보병 일등상사 출신 브래들리 크로포드는 자신의 신상이 최근 미콜라이우에서 체포된 러시아 타격대원 전화에서 나왔다고 했다. 지난 달에는 그가 묵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을 러시아군 미사일이 타격해 화상을 입기도 했다.

39살인 크로포드는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베테랑으로 지난 4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 국기 견장이 달린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고 있다.

전장 상황이 급박하기에 신병들은 단기간에 훈련을 마쳐야 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시간은 그들 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도 위험했지만 이곳 신병들은 반군활동이 아닌 전면전에 투입돼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소속된 우크라이나군 36 해병연대는 전쟁 초기 아조우해 연안 마리우폴에 배치돼 포위됐었다. 약 1000여명이 전사 또는 부상해 부대가 사실상 소멸된 상태였다. 부대를 새로 편성한 뒤 탄생한 연대 소속 대대들에게 헤르손 인근 도시를 탈환하라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됐다.

신임 대대장 올렉산드르 분토우 대위 등 많은 부대원들이 헤르손 출신이다. 대위의 가족은 간신히 러시아 점령지에서 탈출했지만 많은 부대원들의 가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분토우 대위는 "고향을 되찾아야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어렵겠지만 시가전 훈련을 받는 이유다. 시가전은 가장 어려운 전투다. 아무리 훈련을 받더라도 방어보다 공격이 어렵다"고 했다.

분토우 대위 등 부대 선임 지휘관들은 전투 경험이 많지만 다른 하급 지휘관들은 신병들이다. 최근 며칠 동안 예비역 미 육군 대위 짐 리가 부대 위관 장교들을 대상으로 헤르손시에서 벌이게 될 시가전에 대해 작전계획을 교육했다.

폴란드에서 석사학위를 받다가 전쟁이 터지자마자 달려온 리 교관은 "밑바닥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훈련을 마친 소대장 비탈리 중위는 42살의 검사출신으로 대학 시절 ROTC 훈련을 받았다. 전쟁이 터진 뒤 40일간의 훈련을 마쳤다. 그는 "군사학을 완전히 새로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사상자 발생을 무시하고 무작정 밀어부친다. 우리 군은 병사의 목숨과 건강이 최우선이다. 우리가 적보다 뛰어나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 미국인 교관은 미 보병의 전술을 가르쳐 소련식 교범에 따라 전투할 것으로 생각하는 러시아군을 놀래키는 것이 훈련의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교관들은 1인당 32명으로 편성된 2개 소대를 훈련시킨다. 제1소대장 막심중위(38)는 6월까지 돈바스 지역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제2소대장 이호르 중위(32)는 오데사에서 선박 엔지니어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전투 경험은 없다.

두 소대는 훈련 4일차에 무기사용법과 응급처치법을 배웠다. 지금은 들판에서 나뭇가지와 잎으로 은폐하고 기습공격을 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미국인으로 이스라엘 공수부대원 출신인 테일러 브리지스 교관이 훈련병이 "탕, 탕, 탕"이라고 소리치자 총을 맞아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훈련병이 그를 뒤집고 몸을 수색하는 동안 꿈틀거렸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긴장감이 팽팽했다. 소련식 청백 무늬 셔츠를 입은 예비역 해병 출신 훈령병 미챠가 크로포드 훈련대장에게 풋내기 소대장 지시를 받는 것에 불평했다. 그는 자기 동료들 대부분이 미콜라이우 전투에서 전사했다면서 전임 지휘관이 전사한 뒤 이 부대로 전출됐다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불평하는 걸 크로포드 대장이 아무 말 없이 들어줬다.

이호르 중위 소대는 건물을 점령하는 훈련을 했다. 미콜라이우 인근 한 마을에 대대 임시 사령부를 설치하고 진행하는 훈련이다. 이들은 야간에 러시아군 미사일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나무 아래 텐트를 치고 지낸다.

해병대원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한 건물에 진입한 뒤 계단을 뛰어올랐고 마지막 병사가 후방을 경계했다. 중위가 점심 휴식 시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총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건물을 점령할 줄 알게 됐다." 분토우 대대장도 "땀을 흘려야 피를 안흘린다"고 했다.

훈련 마지막 날인 10일차에 두 소대가 소나무와 아카시 나무 숲속에 모여 떨어진 곳에 각각의 야전 지휘부를 설치했다. 한 소대는 녹색 완장을 다른 소대는 파란색 완장을 찼고 교관은 노랑 완장을 찼다. 막심 중위 소대가 비포장도로 옆 가슴높이 해바라기 밭에서 상대 소대를 기습하는 훈련이었다. 아직 헬멧이 완전히 지급되지 않아 양측 모두 헬멧을 벋고 전투를 벌였다.

톰벌린 교관이 해병들에게 "화력과 병력이 우세한 적군을 상대로 기습전을 벌이는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미챠가 중위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무에 오르며 망을 보겠다고 했다. 다른 대원들이 "거긴 바나나가 없어. 빨리 내려와 원숭아"라고 놀렸다. 막심대위가 기습을 시작하면서 적군 이호르 소대장을 포함한 정찰대 2명이 즉시 제거됐다. 대성공이었다.

막심 대위는 그러나 후속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크로포드 훈련대장이 "두 사람을 사살했다.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재촉했다. 통역이 상대방이 막심 중위 부대원 2명을 사살한 것으로 잘못 전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진 것 같네요"라며 한 숨을 쉬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소대원들은 반격에 나섰다. 크로포드 교관이 "중위가 빨리 판단을 못하면 전 대원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했다.

공수를 교대한 훈련이 시작되자 이호르 중위가 부대원 자랑을 했다. 러시아 점령지에서 탈출해 우크라이나군에 자원한 부대원 한 명이 웃통을 벗어 허수아비에게 입히고 헬멧을 씌워서 러시아군을 속이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실제 부대원들은 해바라기 숲에 숨어서 기습공격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톰벌린 교관이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들이 기습공격 장소를 찾으러 이동하는 동안 보바라는 이름의 해병 형제가 해바라기 씨를 따서 잘 익었는지 확인했다. 한 사람이 "올해는 대풍"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우크라이나 중부 흐멜니츠키 지역 출신이었다. 동생이 "촌놈만 끌려온다. 도시 출신이 끌려온 걸 봤냐"며 불평했다. 형제는 자신들은 "농부지 전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톰벌린 교관이 해바라기가 흔들리는 걸 보고 화를 버럭 냈다. "무슨 짓이야. 그러면 위치가 노출돼잖아."

이날 저녁 교관 중 한 사람이 로켓이 날아온다고 무선으로 알렸다. 그러자 톰벌린이 "전화와 불을 꺼"라고 소리쳤다. 휴대폰이 모여 있으면 러시아 전자전 장비에 포착돼 표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방공부대가 발사한 미사일들이 하늘에서 작렬했다.

이호르 중위가 3개 분대에 휴대폰 문자로 복잡한 작전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휴대폰을 켜지 못하자 생각을 바꿨다. 전 분대원들이 들판으로 산개해 막심 중위 소대를 기습하기로 했다.

어둠속에서 교관들이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보며 러시아군 드론이 나타나는지 경계했다. 한 병사가 "저기 있네. 바람 때문에 흔들거리는 것 같은데"라고 하자 다른 병사가 그건 인공위성이야"라고 했다. 나무 위에서 불빛이 비쳤다. 누군가가 "분명 별은 아닌데 우리한테 천천히 오고 있다"고 했지만 5분 뒤에도 가까워지진 않았다. 리 대위가 스마트폰을 켜 앱으로 물체를 확인한 뒤 "토성이네"라고 말했다.

자정 직후 이호르 중위 소대가 숲 속을 우회에 막심 중위 소대를 후방에서 기습했다. 수십m 떨어진 곳이었지만 야시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병들이 모의 수류탄을 상대 지휘소에 던지며 "쾅, 쾅, 쾅"이라고 소리쳤다. 톰버린 교관이 "너희들 모두 죽었다"라고 소리쳤다.

톰벌린 교관이 숲으로 돌아오는 훈련병들을 보며 "아주 잘 했다"다고 칭찬했다. 전술만 좀 더 개발하면 실전을 벌일 수 있는 부대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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