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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바이든 “개자식” 부시 “멍청이”… 정상들 아찔한 ‘핫 마이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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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켜진줄 모르고 내뱉은 사담 논란

바이든, 올초 폭스뉴스 기자에 “멍청한 개자식”

캐나다 트뤼도, 트럼프 흉보다 외교 위기

트럼프 “여자 음부 움켜쥐라” 여성들 반발

앨 고어 TV토론 중 ‘한숨’만으로도 도마

조선일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백악관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해 질문을 던진 폭스뉴스 기자를 향해 혼잣말로 "멍청한 개자식(stupid son of a bitch"이라고 욕설하는 모습이 의회 중계방송을 통해 그대로 중계됐다. /폭스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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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상이나 고위 관료, 유명인사들이 공식석상에서 마이크가 켜져있거나 녹음기가 돌아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뱉은 사담이나 농담이 여과없이 공개돼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에서 ‘핫 마이크(hot mic)’라고 한다. 마이크가 아직 뜨거울 때 터진 사고라는 뜻이다. ‘오픈 마이크(open mic)’ ‘낀 마이크(stuck mic)’라고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미국 언론에서 ‘핫 마이크’로 보도되고 있다.

최근 가장 유명한 ‘핫마이크’ 사고는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 중, 보수 매체 폭스뉴스 출입기자가 퇴장하다가 미국의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멍청한 개자식(stupid son-of-a bitch)”라고 혼자 중얼거린 일이다. 백악관 내부 음향 시설로는 이 발언이 차단돼 바이든은 바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의회 중계방송 C-Span을 타고 또렷하게 전국에 생중계됐다. 백악관으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공화당과 언론들이 ‘언론 비하’ 등으로 맹비난해 며칠간 미 정계를 뒤덮었다. 일각에선 ‘바이든이 폭스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론도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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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인 2010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오바마케어' 법안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자축하고 있다. 바이든이 오바마에게 'a big fucking deal'이라는 비속어로 속삭이는 음성이 노출됐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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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서민들의 친근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해 ‘조 아저씨(Uncle Joe)’로 불리는 바이든 대통령은 수차례 핫마이크 사고를 냈다. 그는 2010년 부통령 시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대 치적인 건강보험 확대안 ‘오바마케어’를 서명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을 치켜세운답시고 귀엣말로 “이거 X라 대단한 일(a big fucking deal)”이라고 했다. 오바마와 바이든 두 사람은 ‘브로맨스(남자들의 우정)의 원조’로 불릴 정도로 격의없이 친했지만, 야당 등에선 “이게 부통령이 법안 서명식에서 할 언사냐”며 난리가 났다. 바이든은 당시 “모든 마이크는 켜져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자신의 부주의함을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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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코로나 방역 사령탑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지난 2021년 미 상원의회에 출석한 모습. 지난 1월 공화당 상원의원의 공격적 질의에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혼잣말로 "멍청이(moron)"라고 말한 게 공개돼 큰 홍역을 치렀다. 미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의회 모욕은 웬만해선 용서받기 쉽지 않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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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코로나 방역 사령탑으로 존경받은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도 지난 1월 상원 의회 보건위원회 출석 중 자신의 연봉을 캐물은 공화당 소속 로저 마샬(캔자스) 상원의원에게 “매년 재산 공개하는데 자료 보면 되지 않느냐”고 반박한 뒤, 마이크를 껐다고 생각했는지 “천치 자식(moron)”이라고 욕한 게 들켰다. 미 의회 모욕은 여파가 크다. 이미 보수 진영에서 살해 협박과 인신 공격에 시달리던 파우치는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의회의 반발을 사면서, 반 세기의 공직 생활을 접고 올 연말 은퇴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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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2019년 영국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 리셉션에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정상과 술을 마시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험담하는 듯한 장면과 발언이 방송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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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영국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중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대화하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을 두고 “40분 동안이나 기자회견을 하더라. 참모들 입이 떡 벌어지더라”며 험담하는 듯한 발언이 방송 카메라에 고스란히 녹음돼 공개됐다. 트럼프는 그렇지 않아도 못마땅해하던 트뤼도를 두고 “위선자(two-faced)”라고 했다. 미국의 핵심 동맹인 캐나다와 외교 위기가 불거지자 트뤼도는 “양국 관계는 변함없이 좋다”며 수습했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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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11년 전 한 방송 녹화장에서 휴식 시간에 "스타가 되면 여성의 음부(pussy)를 움켜잡아도 된다"고 말한 내용이 뒤늦게 논란이 되며 연일 언론을 도배했다. /데일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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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사업가 시절인 2005년 NBC 토크쇼 녹화 중 휴식 시간에 진행자에게 “스타가 되면 여자들이 뭐든지 하게 내버려두더라. 거시기를 움켜쥐어도 괜찮다니까(grab them by the pussy)”라고 시시덕거린 녹취록이 2016년 대선 당시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다시 불거졌다. ‘pussy’는 털이 부드러운 고양이, 혹은 여성의 음부를 뜻하는 비속어다.

과거의 개인적 사담까지 정치 논란에 끌어들여야 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맞붙은 트럼프의 ‘여성 폄하’ 논란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 전세계 600개 도시에서 여성들이 핑크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pussy’ 발언에 항의하는 반(反)트럼프 시위를 벌일 정도로 파장이 오래 갔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은 2000년 대선 당시 노동절 집회 연설 무대에서 러닝메이트인 딕 체니 부통령 후보와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비판적인 뉴욕타임스 기자를 거명하며 ‘메이저 리그급 얼간이(asshole)’이라고 한 게 마이크를 탔다. 아직까지 그 동영상도 남아있다. 당시 언론에 며칠간 이 스캔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부시는 “제가 사적으로 한 말이 공중 전파를 타게 돼 유감이다. 제가 한 말을 들은 모두를 향해 유감”이라고 사실상 사과했다.

당시 대선전에선 앨 고어 민주당 후보 역시 부시와의 TV 토론 중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가 그 소리가 공개돼 태도 논란이 일자, “부시 (텍사스)주지사나 저나 마이크가 언제 꺼지고 켜지는 지를 잘 알아둬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4년엔 ‘핫 마이크’가 전쟁 위기까지 불러온 적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별장에서 주례 라디오 연설을 앞두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던 중, 말미에 “국민 여러분, 러시아를 영원히 불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하게 돼 기쁩니다. 5분 뒤 러시아 폭격을 시작합니다”라고 농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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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오른쪽)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이 1985년 스위스에서 열린 회담하는 모습. 바로 직전 해 레이건이 라디오 방송 마이크 테스트 중 "5분 뒤 소련 폭격을 시작한다"고 농담한 일로 냉전 중이던 미소는 큰 위기에 부닥쳤다. '핫마이크 사고'로는 가장 큰 참사를 낳을 뻔한 사건이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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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이 즉각 생중계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모종의 경로로 유출이 됐다. 소련은 반발했고, 그해 미 대선에서도 야당이 레이건을 ‘신중하지 못하게 국가 안보를 위기로 몰고갔다’며 공격하는 소재가 됐다. 미·소 간 대참사로 이어질 뻔한 역사적 핫마이크 사고였지만, 당시 개방주의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레이건의 친분 덕에 사태 악화를 막았다는 말도 나왔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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