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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내 아이 끙아 모습도 귀여워" 모든 일상 SNS에…'범죄' 표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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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배한님 기자] [u클린 2022 ⑥-1]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법제화 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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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세이브더칠드런



#A씨는 SNS에서 지인이 아이를 훈육 중이라며 올린 사진을 보았다. 아이가 사고를 쳤다며 벽에 붙어 양손을 들고 벌을 선 채 시무룩해있는 사진을 본 A씨는 충격을 받았다. A씨는 "아이에게 수치스러울 수 있는 순간이고 벌을 받는 기분이 좋지 않은 시간인데, 엄마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면 자신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 괴롭히며 즐거워한다고 느낄 것 같다"며 "훈육하는 모습을 공개적인 게시물로 남기는 것은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일이라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B씨는 지인이 자신의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뽀뽀하는 사진을 올린 SNS 게시물을 발견했다. 게시물에는 뽀뽀를 받는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B씨는 "아이들에게 순수한 애정의 표현이겠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사생활일 수도 있다"며 "이 사진이 언제 어떻게 되돌아와서 나중에 두 아이에게 놀림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

해당 사례는 세이브더칠드런이 '셰어런팅 다시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부터 제보 받은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런 게시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아동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팀장은 "아이들의 배변하는 모습, 목욕하는 모습, 떼쓰는 모습, 벌 서는 모습까지 SNS에 올라와있다"며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아동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더 확장돼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영유아 부모 86.1% "내 아이 사진 SNS에 올린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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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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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활성화되면서 부모에 의해 많은 아이들의 사생활이 노출되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일상을 SNS에 올리는 '셰어런팅(Sharenting)'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수 년전부터 관련 논의가 폭넓게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문제 인식은커녕 자녀의 모든 일상을 SNS에 공유(Share)하는 부모(Parents)인 '셰어런츠(Sharents)가 늘어나는 추세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해 2월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0~11세 자녀를 둔 부모의 86.1%가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게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셰어런팅은 특히 자녀의 사생활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노출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자녀의 사진 또는 동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이를 설명하거나 이해를 구해본 적 있다고 답한 사람은 44.6%였다. 절반 이상의 부모가 아이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이다. 이 중 35.8%가 게시물을 전체 공개로 올렸고, 친구 등 팔로워 공개가 47%, 선택한 일부 사람에게만 공개한 경우가 12.4%였으며 비공개는 3.8%에 불과했다.


무심코 올린 아이 사진 '왕따'나 '유괴' 위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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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무분별하게 공유된 사진으로 인해 아이들은 놀림감이나 왕따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김명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전처럼 어린 시절 사진이 앨범 안에만 있지 않고 공유돼 어른이나 직업인이 된 이후 회자 되고 문제 되기도 한다"며 "아동·청소년의 사생활과 명예 보호 관점, 다른 사람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보장 등의 관점으로 여러 정책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셰어런팅으로 인해 아동·청소년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부모가 무심코 올린 사진이 무단도용되거나 불법으로 합성·유포돼 폭언·성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 유괴될 위험도 높아진다. SNS에 자녀의 콘텐츠를 올린 부모의 13.2%는 부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중 개인정보 도용 문제를 겪은 부모(3.3%)도 있었다.

영국의 금융 기업 바클레이즈는 2030년에 성인이 될 현 아동·청소년이 겪을 신분 도용 범죄의 3분의 2는 셰어런팅에 의해 발생할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최근 디지털장의사 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에 아동·청소년이 의뢰한 개인정보 삭제 요청은 연 평균 3300건에 달한다.


아동 '잊힐 권리' 법제화…어린시절 내 사진, 내년부터 삭제 요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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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개인정보보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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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보호를 확대하기 위한 법제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교육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는 지난 7월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2024년까지 관련 법을 제정키로 했다. 보호 대상인 아동·청소년의 범위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8세 미만으로 확대한다. 해당 계획은 아동이 많이 이용하는 게임·SNS·교육 3개 분야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강화하고 관련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정부는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첫 시범 사업으로 '셰어런팅'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에 내년부터는 아동·청소년 시절 부모가 동의없이 SNS에 올린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이정렬 개인정보위 개인정보정책국장은 "신규 사업으로 7억원 정도의 예산이 배정됐다"며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법제화도 중요하지만 셰어런팅 등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문제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희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셰어런팅뿐만 아니라 학원에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부모에게 전달되는, 일종의 디지털 감시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을 알 수 있다"며 "아동청소년이 좀 더 독립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인격체로 자라나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논의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바라봤다.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아동학 교수도 "이번 생은 다들 처음인 것처럼 우리 모두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처음 살고 있다"며 "셰어런팅도 부모들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측면이 있어서 관련 교육의 범주를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 기업 등까지 확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한님 기자 bhn2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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