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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성호철, 당신의 도쿄] “아베는 국적”... 세상 슬픈 아베의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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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철, 당신의 도쿄] 조선일보 도쿄특파원이 당신의 창(窓]이 돼, 니혼을 보여드립니다.

조선일보

/아키에 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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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는 27일은 2달전 피격 사망한 아베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이다] 8년 8개월이라는 일본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 자민당의 최대파벌인 아베파의 수장인 그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 기시다 내각은 피격후 며칠 되지도 않아 ‘국장’을 결정했다. 아베 국장을 열흘 앞둔, 이달 17~18일 마이니치신문사와 사회조사연구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아베 국장을 반대한다’는 답변은 62%였고, ‘국장 찬성’은 27%였다. 아사히신문(10~11일)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38%, 반대 56%였다. NHK(9~11일)에서도 찬성 32%, 반대 57%였다. 아베 전 총리를 가장 지지했던 신문사라는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17~18일 실시)에서도 찬성은 31.5%에 그쳤고 반대가 62.3%였다. 일본 국민의 대다수는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은 슬프지만, 모든 국민이 함께 슬퍼할 국장’은 아닌 것이다.

#2. [불참] 지난 22일 오전, 일본의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이 외신 기자 회견을 자청했다. 입헌민주당의 집행진 전원이 아베 국장에 불참한다는 것이다. 당초 40분간 예정된 기자 회견은 연이은 질문에 1시간을 넘었다. 돌발 상황도 있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외신 매체의 한 기자가 질문이 아닌, 입헌민주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아베 국장에 불참한다는 결정을 이렇게 해외 매체 앞에서 기자 회견하는 건, 오히려 일본의 이미지에 먹칠하는게 아닌가”라는 것이다. 아베 국장은 더는 해외에 알리고픈 ‘위대한 일본 정치인의 추모 자리’가 아닌, 감추고 싶은 비밀일까.

이날 오카다 간사장은 3가지 불참의 변을 들었다. “기시다 내각은 아베 국장과 관련, 국회에서도, 국민에게도 전혀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장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 “두번째는 국장에 대한 명확한 법적인 근거나 기준이 없다. 그런데도 내각의 판단 만으로 결정했다.” “마지막은 최근까지도 (현역) 총리였던 아베신조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특히 구 통일교와의 관계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오카다 간사장에게 “본인이 내리는, 아베 전 총리 평가”를 물었다. 11선인 오카다 간사장은 1990년 첫 당선 이후 줄곧 아베 전 총리와 반대편에서 민주당·민진당·입헌민주당을 이끈 인물이다. 부총리를 지내기도 했다. “아베 총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도 있었지만, 문제도 많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내릴 것이다. 생각이 많지만 그다지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아베 총리가 국회라는 장소에서 몇차례나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한데 대해선 매우 큰 의문을 품고 있다. 또 통일교 문제는 뿌리가 깊고, 정책을 왜곡할 가능성도 큰 데, 그 중심에 아베 전 총리가 있던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철저하게 밝혀져야한다”

#3. [”아베는 국적이다”] 여당인 자민당의 중진인 무라카미 세이치로 중의원 의원(12선, 전 행정개혁상)이 21일 “아베 국장은 본래 반대 입장이었다. 출석하면 국장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불참하겠다”고 말했다. 불참의 이유로 “국장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의 업적이 국장에 걸맞는지도 불확실한데,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이상, 국장 강행은 국민의 분단을 조장할 뿐이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무라카미 전 행정상이 “(아베 총리는) 재정, 금융, 외교를 너덜너널하게 만들었고, 관료 기구마저 파괴한데다, 구 통일교를 선거에 끌어들인 인물이다. 나보고 평가하라면, 국적(國賊)이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나라를 어지럽히고 해를 끼진 도적이라는 비판이 여당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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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아베신조 전 총리와 아키에 여사 /야후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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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시다] 아베 국장을 강행한 기시다 후미오 내각 지지율은 곤두박질이다. 작년 출범이후 줄곧 50~70%를 유지한 ‘인기 정권’이었다. 일본에선 “딱히 한 일도 없는데, 지지율이 높은 기시다 정권”이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마이니치신문과 사회조사연구센터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29%에 불과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64%. 같은 조사에서 자민당의 지지율도 23%까지 추락했다.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17~18일)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42.3%에 그쳤다. 기시다 총리는 “여론조사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제에서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총리에게 내각 지지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중한 경고다.

아베 국장을 결정한 당사자인 기시다 총리는 후회할까. 아베 피격 사망후 일주일도 안된 시점에 기시다 총리는 “국장한다”고 발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내 정치 기반이 약하다. 여당인 자민당의 총재가 곧 총리가 되는데, 그는 당내 네번째 파벌인 기시다파벌(소속의원 43명)의 수장이다. 자민당 최대파벌은 아베파(97명)이다. 작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기시다가 승리한 것은 모테기파(54명)와 아소파(51명)의 지원을 받은 덕분이다. 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아베 국장에 국민이 아무리 반대해도 기시다 정권이 묵살하는 사정”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돌발 뉴스가 나온건 이달 초다. 한 온라인매체가 “당초 기시다 정권은 내각·자민당 합동장례식을 검토했었는데, 아소 부총재(아소파의 수장)가 3번이나 전화해 국장으로 하라고 압박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보수의 상징인 아베 전 총리를 국장으로 예우하지 않으면 반발을 부른다는 것이다. 아소 부총재는 기시다 총리에게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5. [군국주의의 냄새] ‘논리의 문제’는 법적 근거를 일컫는다. 국장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대목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국장에 대한 법률이 있었지만, 패전과 함께 사라졌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때 고종의 장례식은 일본의 국장이었다. 2차 세계 대선 이후 일본에선 전직 총리의 장례식은 ‘내각 및 소속 정당의 합동장’으로 치르는 게 관례였다. 예외는 1967년 사망한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가 유일하다.

일본에서 국장이란 단어에 어딘지 모를 ‘군국주의’의 냄새가 나는 이유다. 기시다 정권은 아베 국장의 근거로 내각부설치법의 ‘국가의 의식에 관련한 사무’라는 조항을 활용했다. 국가의 의식 집행은 행정권에 속한다는 게 내각부설치법이다.

#6. [돈 문제다] 내각 합동장일 경우엔 대략 절반 정도는 국가가 내지만 나머지는 자민당이나 유족도 부담한다. 규모도 작다. 국장은 다르다. 국가가 치르는 장례식이다. 당초 비용 문제가 나오자, 기시다 내각은 2억5000만엔(약 25억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말그대로 장례식 행사 비용만 그 정도였다. 외국에서 수천명이 오면, 당연히 요인 경비와 같은 비용이 들어간다. 모두 합치니 16억6000만엔(약 166억원)이었다.

#7.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장] 기시다 내각의 마지막 희망은 조문외교였다. 유력한 해외 정치인들이 도쿄에 모여서 묵념하는 모습이 연출되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봤다. 요미우리신문이 24일자로 “해외에서 정상급 인사의 조문객 연이어 온다”라고 기사를 냈다. 하지만 현직 정상은 인도 모디 총리, 호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전부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온다. ‘50국 정상급 인사와 만난다’는 자랑이 무색하다. 현직은 그렇다치더라도, 국장의 이유는 ‘8년8개월의 긴 총리 재직 기간에 외교적 성과’인데도 아베 총리 시절의 해외 정상들도 오지 않는다. 아베 전 총리와 오랜 기간 외교 파트너였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는 참석하지 않는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도 오지 않는다. 2000년 오부치 전 총리의 장례식은 내각합동장이었지만,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등 주요 국가 수반이 장례식에 직접 참석했다. 일본 정부는 더는 조문외교를 자랑하지 않는다. 19일 열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국장과 너무 비교되기 때문이다.

#8. [아키에의 눈물] 결국 아베 국장에서 일본 국민 묵념 절차는 사라졌다. 일본 정부는 27일 아베 국장때 국민들에게 묵념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초중고등학교 등에 조기의 게양도 요청하지 않는다. 국장까지 열어서, 국가가 지도자를 떠나보내는데 묵념의 시간을 없앤 것이다. “유족인 아키에 여사는 스마트폰을 만지지도 않고 인터넷을 보지 않으려고 해요. 낮에는 조문 오는 손님을 맞기도 하지만, 매일 상실감이 더 커지는지, 밤에는 혼자서 울곤 합니다. 그런 아키에 여사에게 국장 사무국에서는 연이어 이런저런 협력 요청 전화가 옵니다. 어머니 요코 씨는 정신적인 쇼크가 커서, 병원 다니고 있습니다. 몸 상황에 따라서는 국장에 참석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비지니스가 아베가(家)의 관계자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9. [누구를 위한 국장일까] 자칭 보수이며 아베를 지지한다는 일본 지인은 “그분을 위해서는 조용히 보내줘야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분은 일본을 위해선 정말 진심이었어요. 반대하는 사람도 엄청 많지만요. 아베는 본인의 국장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했다. 아베를 싫어하는 인사는 그랬다. ‘정말 아베스러운 퇴장’이라고.

조선일보

7월 8일 오전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연설 중이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고 쓰러진 뒤 응급 조치를 받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마이니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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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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