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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날씨에 생존 달려”…농민·어민·도시노동자의 기후정의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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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

기후정의행진 나서는 사람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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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의 농민 김사옥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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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62)씨는 경남 거창에서 20년째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재배하는 것은 사과(홍로)와 포도(캠벨얼리)다. 최근 3년 동안, 그의 과수원 사과 수확량은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잦은 비와 습한 날씨 탓에 3년째 사과 탄저병이 번졌기 때문이다. 이 병이 생기면 사과 표면에 갈색 반점이 생기고, 과육이 썩는다. 포도 작황도 좋지 않다. 그가 키우는 품종은 고온에 약한데, 해마다 폭염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기온이 점점 더 오를 텐데, 지금 이런 과일을 언제까지 재배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농촌진흥청의 분석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농진청이 지난 4월 분석한 결과를 보면, 50년 뒤에는 온난화로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하고, 포도 재배지도 30년 뒤에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으로 지속될 때의 상황을 가정한 결과다.

과일이나 농작물은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수확량은 농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박씨는 “폭우, 가뭄 등 이상기후에 따른 피해가 과거보다 훨씬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생산량과 소득이 줄면서 생활도 불안정해졌다. “농민으로서 기후위기를 걱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의 말처럼 농민들은 기후위기 최전선에 서 있다. 24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기후정의행진’에 박씨와 같은 농민들이 다수 참여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이유다. 이 행사는 2019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기후위기 관련 집회다. 360여개 기후·환경·시민단체의 주도로 마련됐다.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힘을 모으자는 취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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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서 20년째 고추와 참외 등을 재배하는 김사옥(65)씨도 기후변화 영향으로 시름하고 있다. “고추에 탄저병이 생겨 수확량이 절반 이상 줄었어요. 경제적 타격이 크죠. 참외농사를 지으면서는 꿀벌이 사라져 일일이 붓으로 인공수정을 해야 했어요.” 지난해 겨울 전국에서 꿀벌 약 80억마리가 사라졌는데, 기후변화가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김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기후위기를 체감한다”며 “갈수록 병충해가 심해지고 작물이 병드는데도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에 관련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기후정의행진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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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의 어민 김정훈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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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직격타를 맞는 것은 어민들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수산물 가공업체 대표 최광운(70)씨는 “기후변화로 바다 생태계가 병들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계절에 어느 바다에 나가면 어떤 고기가 잘 잡힌다는 경험이 어민들에게 축적돼 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경험이 잘 안 통합니다. 바다가 달라진 거죠.” 잡히는 물고기 종류와 양이 달라지면서 어민은 물론, 가공업체 수익이 줄고 있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의 최근 1년 매출이 앞선 해에 견줘 최소 10%는 줄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최씨는 “수온 상승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에서 40년 동안 대구, 가자미 등을 잡아온 김정훈(62)씨는 늘어난 해파리 떼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국내 해역에서 독성 해파리가 자주 발견되는데, 이는 기후변화로 수온이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김씨는 “과거와 달리, 지난해부터는 거의 날마다 해파리와 싸우고 있다”며 “해파리 때문에 어망이 손상되고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타격이 크다”고 했다. 그는 또 “정작 잡혀야 하는 오징어는 지난해와 올해 수온이 높아 거의 잡히지 않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열대성 어종이 종종 잡힌다. 수온 상승이 심각하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지난 8일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양수산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이상기후에 따른 양식업 피해액은 1392억원에 이르렀다. 전체 피해액의 89%는 고수온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17도였던 국내 해역 평균 수온은 지난해 17.96도로 높아졌고, 같은 기간 동해 수온은 16.89도에서 18.61도까지 올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2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수온 상승에 따라 독성 해파리와 아열대성 어종 출현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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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틀 목수 임차진씨(왼쪽).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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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농어촌 1차 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도시 노동자의 생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5년째 경기도와 강원도 등에서 형틀 목수로 일하는 임차진(51)씨는 일급 단위로 급여를 받는데,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폭우나 폭염 등으로 보름가량 일하지 못했다. 그는 “하루 벌이로 먹고사는데 일당을 받지 못하니 생활이 어려졌다”고 말했다.

특히, 기후위기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임씨는 “지난달 폭우 뒤에 현장이 물에 잠겼다. 일을 쉬긴 했지만, 이런 경우 감전 위험이 있고, 자재가 미끄러워 안전사고 위험도 커진다”고 했다. 폭우뿐만 아니라 폭염도 위협요소다. 그는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문자가 올 정도의 날씨에도 땡볕에서 중노동을 한다”며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안전모에서부터 땀이 줄줄 흘러서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다. 앞으로 갈수록 더워져, 여름에는 일을 못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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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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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기사인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도 “30년간 현장에서 일하면서 올해 같은 폭우는 처음 겪었다. 폭우나 폭염은 건설노동자의 생존과도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촉구하기 위해 그는 건설노동자들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나선다. 임씨는 근무 일정상 이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겠다”며 “기후위기 최전선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민도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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