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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내부총질”부터 “이 ××”…윤 대통령 입이 추락시킨 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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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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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의 답은 이랬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불량배 출신이었던 자로는 공자의 이상적인 대답이 못마땅했던 듯하다. “선생님, 너무 고지식하십니다. 어떻게 그걸 바로잡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공자도 화가 났던 모양이다. “네 이놈! 함부로 말하는구나.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 법이거늘.”

공자의 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맞아떨어지지 못한다. 형벌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어디에 놓을지 모르게 된다.”

<논어> ‘자로’ 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정치가 말의 힘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말의 힘은 ‘정명’, 어떤 일의 이름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름을 바로잡는 일은 ‘임금은 임금으로서, 신하는 신하로서’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의 이름을 바로 세워야 제대로 된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자는 정치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이름 붙여 부르지 않으면, 벌이려는 일을 말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탓에 설득이 힘들어 종래에는 뜻한 바를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더하여 정치가가 올바른 말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다스림의 의식인 예와 악을 제대로 실천할 수 없고, 절차로서 의식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으면 법 집행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결국엔 백성들이 혼란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

오랫동안 덮어둔 <논어>를 다시 살펴본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현실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대통령이 주고받은 문자가 그렇다. 당대표의 행위를 두고 ‘내부총질’이라 이름 붙인 그 문자는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겪고 있는 혼란의 시작이었다.

체리따봉을 더한, 대통령의 직분을 망각한 듯한 ‘내부총질’이라는 표현은 그 어떤 이유와 말로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려웠다. 공자의 말씀에 따라 생각해보면,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예와 악의 절차가 작동하지 않으니 이준석 대표를 향한 처벌 역시 부당하다는 비판이 일고 비대위 전환에 대한 정당성도 확보할 수 없었다. 결국, 법원마저 이준석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국민의힘은 여전히 대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다.

대통령이 이처럼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망각하고 또 함부로 내뱉은 말이 이젠 국제적 논란을 만들었다. 뉴욕에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이 공식 석상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욕설이 섞인 막말(“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팔려서 어떻게 하나”)을 하는 듯한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이 꼬인 말을 풀어내자니 대통령실의 해명도 논란을 낳았다. ‘이 ××’가 미국 의회가 아니라 우리 국회를 말한 것이고, ‘바이든’은 ‘날리면’이란 말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졸지에 대한민국 의원들이 ‘이 ××’가 돼버린 것이다. 뉴욕을 떠나며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이 글로벌펀드에서 정부가 약속한 국제사회 1억달러 공여에 국회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국외 순방을 나서기 직전, 대통령실이 공론화 과정 없이 영빈관 신축을 하려다 밀실정치라는 여론의 역풍을 맞으며 좌절됐다. 대통령실은 영빈관 신축을 두고 ‘국격에 맞게 내외빈을 영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질문해본다. ‘나라의 품격’을 세우는 데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여기엔 국내외 귀빈을 대접하는 공간이 포함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자에 따르면 예악의 의식을 위한 공간은 정치에서 말을 바르게 세운 다음에야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난 몇개월 대통령의 말과 사적 채용, 대통령실의 불투명한 수의계약과 같은 문제에 대한 해명은 끊임없이 정치적 논란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국민에게 지금 가장 국격이 떨어지는 건 말을 바르게 세우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다. ‘정치의 품격’이 ‘나라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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