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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엔화 이어 파운드화도 추락…달러 독주, 더 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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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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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가 야심 차게 마련한 대규모 감세 정책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경제 회복을 위한 감세안이라는 영국 정부의 발표가 무색하게도 파운드화가 37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하고, 전 세계 증시와 유가를 큰 폭으로 끌어내렸다. 감세를 통해 사실상 돈 풀기에 나서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투자 심리를 짓밟았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도 시장 불안을 키웠다.

투자회사 하그리브스랜스다운의 수재나 스트리터 수석애널리스트는 AP통신에 "엄청난 물가 상승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쿼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이 예산으로 불꽃놀이를 했다고 본다"며 "자금 조달 방안이 없는 광범위한 감세 정책은 정부의 부채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감세는 재정건전성만 악화시킬 뿐 인플레이션 잡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해석인 셈이다. 영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9.9% 올랐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며 소득세와 한국의 주택 취득세에 해당하는 인지세를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소득세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인하하고 소득이 15만파운드인 고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최고세율도 45%에서 40%로 낮추기로 했다. 또 인지세 부과 대상이 되는 주택가격 기준을 현 12만5000파운드에서 25만파운드로 2배로 올렸다. 아울러 기존 19%에서 25%로 올리려 했던 법인세 인상 계획은 폐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의 이번 감세안은 1972년 이후 반세기 만에 가장 크다고 전했다. 콰텡 장관은 하원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추가 세수 확보 방안을 밝히지 않았다.

시장이 이처럼 감세 정책에 차갑게 반응하면서 '제2의 대처'를 표방하던 트러스 총리가 취임 초부터 리더십 위기에 봉착했다.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소득수준 최상위 계층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을 골자로 한 트러스 총리의 정책이 이른바 '낙수효과' 경제 정책으로 불린다고 CNBC는 설명했다. 낙수효과 정책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 기조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짙어지는 가운데 영국 정부가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통화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했다. 폴 존슨 재정연구소(IFS) 소장은 "영국 정부가 점점 더 비싼 금리로 더 많은 돈을 빌리고 정부부채를 지속 불가능한 증가 경로로 몰아넣으면서 더 나은 성장을 기대하는 것 같다"며 "무모한 도박"이라고 밝혔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영국은 자신을 침몰 시장으로 몰고 가는 신흥시장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거시 정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낙수효과 경제에 진절머리가 난다. 이는 결코 작동한 바 없다"며 "우리는 경제의 중하위 계층으로부터 경제를 세워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2일 "영국이 1980년대 레이건 정책을 따라했지만 잘못된 정책을 흉내 낸 것"이라며 "유일한 해법은 증세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이번 감세 정책에 대해 "정치·경제적 도박"이라는 표현을 썼다. 파운드화 폭락을 막기 위해 영국중앙은행(BOE)이 더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3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페드 리슨(Fed Listen)' 행사에서 "우리는 예외적으로 이례적인 혼란들 속에 계속 대처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뉴노멀(new normal)'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통화 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파월 의장은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초강경 매파 발언을 통해 긴축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세계 금융시장은 위험 회피가 심화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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