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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히잡 의문사’ 성난 이란 민심…13년 만에 최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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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개 도시 확산, 최소 35명 사망…“신정통치 종식” 주장도

정부는 인터넷 끊고 강경진압…미 ‘핵합의 복원 협상’에 타격

경향신문

시위 격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됐다가 사망한 20대 이란 여성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반정부 집회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테헤란에서 열린 시위 도중 참가자가 점점 늘어나자 경찰이 뒤로 물러서고 있는 모습. 트위터 캡처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된 20대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숨진 사건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2009년 부정선거 항의 시위 이후 13년 만에 최대 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이란 정부가 강경한 진압을 예고해 향후 시위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전체 31개주 80여개 도시에서 24일(현지시간) 동시다발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이란 당국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를 군경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경 5명을 포함해 이날까지 최소 35명이 숨졌다. 인권단체들은 최소 5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타스님 통신은 이날까지 적어도 1200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군경과 시위대 간 무력충돌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보안군은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실탄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테헤란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찰이 창문을 향해 사격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시위대는 보안군을 구타하고 군경 차량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여성의 복장을 감시하는 ‘지도 순찰대’ 본부를 폭파했다. 북서부 소도시 오슈나비에에서는 반정부 시위대가 이란 신정체제를 수호하는 이란혁명수비대(IRGC) 군인들을 막사 밖으로 몰아냈다고 이란 인터내셔널 등이 보도했다.

시위대 사이에서는 이슬람 공화국의 신정통치를 끝내자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 테헤란 대학 시위대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겨냥해 “독재자에게 죽음을” “히잡에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가디언은 보안군과 시위대가 대규모로 충돌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위가 대통령 선거 부정에 항의해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인 2009년 ‘녹색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란 언론인 시마 사베트는 이란 인터내셔널 인터뷰에서 “2009년 녹색운동과 이번 시위의 가장 큰 차이는 시위대가 폭력 정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 이란연대 피루제 마흐무디 국장은 가디언에 “2009년과 달리 대도시만이 아니라 그동안 시위가 없었던 중소도시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처럼 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던지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시위는 과거 시위와 달리 사상 처음으로 테헤란 북부의 부유층과 시장 상인 등 노동계급이 하나가 되고, 이란 주류인 페르시아인과 소수민족인 쿠르드·투르크족이 힘을 합치는 등 계층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란이 강경 보수 성향으로 회귀하고 경제 사정도 악화되자 국가 운영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이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라이시 정부는 서방과의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반면, 히잡 의무착용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며 이를 단속하는 보안군에 대한 지원 자금은 늘렸다.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4일 “정부는 국가와 대중의 안전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이란 내 언론인보호위원회에 따르면 아미니 사망 사건을 처음 보도한 일간지 기자 닐루파 하메디를 포함해 현재까지 최소 17명의 언론인이 체포됐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스마트폰 메신저 앱을 통한 시위 조직을 막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이번 시위로 이란 정부가 서방에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이란 정부가 시위를 폭력 진압하면서 미국이 협상에 즉시 복귀할 가능성도 낮아져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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