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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조용헌 살롱] [1365] 정주영의 용인술(用人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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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오너들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기업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비중에 비해서 사회적 평가는 박한 편이고, 연구도 안 되어 있다고 본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기업 오너들에게 미친 ‘도사참모(道士參謀)’의 영향력 부분이다. 삼성의 이병철은 신입 사원 채용이나 공장 부지, 집터를 선정할 때 도사들을 발탁하여 활용했던 사실은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

1998년 6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현대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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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비해 현대 정주영의 도사참모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정주영은 ‘영발’을 하찮게 여기고 싫어했던 것일까? 찾아보면 있기는 있다. 경북 울진 출신의 L도사. 울진은 ‘격암유록’의 저자 남사고를 배출한 지령(地靈)의 동네이다. L도사는 용모도 귀공자풍의 미남으로 생겼다. 한문도 많이 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20년 전쯤에 필자와 어느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갑자기 ‘조 선생 손바닥 좀 내밀어 보시요’ 하는 게 아닌가.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내가 오른쪽 손바닥을 펴서 내밀자 밥상머리에서 휴대하고 다니던 검정 사인펜으로 ‘大提學出於湖南(대제학출어호남)’이라고 써 줬던 기억이 난다. L도사의 전성기는 나를 만나기 4~5년 전쯤 정주영의 소 떼 방북 시기였다. 정주영에게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가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L이었던 것이다. 왜 소냐? ‘휴전선에 6·25 때 죽은 귀신들이 꽉 차 있다. 특히 외국 군대 귀신들도 많이 있다. 이 귀신들의 방벽을 뚫으려면 힘이 센 소의 뿔로 돌파해야 한다. 그러니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뚫어야 한다’는 조언을 정주영에게 했다. 정주영은 1998년 6월 16일 소 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하여 북한으로 들어갔다. 500마리의 소뿔이 휴전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뉴스였다.

정주영은 학벌을 크게 따지지는 않는 스타일이었지만 SKY 출신을 분야별로 배치하는 용인술이었다. 서울 공대 출신은 기술 파트에다 주로 배치하였다. 곽삼영이 서울공대이다. 이명박 정권 때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냈던 곽승준의 부친이다. 고려대는 영업 쪽이었다. 촌놈 기질이 있어서 돌파력과 친화력이 좋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명박이 이 노선을 대표한다. 연대 출신은 회계와 경리 부문에 배치하였다. 이현태, 안소승이다. 꼼꼼하다고 봤던 것이다. SKY는 사판(事判)에 배치하고 도사는 이판(理判)에 활용하는 용인술이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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