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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3500곳 줄폐업... 中 ‘반도체 대약진운동’의 참혹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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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의 온차이나]

139조원 투자했지만 중국 반도체 기업 줄줄이 문 닫고 생산량도 급감

”반도체는 거대한 국제 협력의 산물, 사회주의식 동원 체제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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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중국 파운드리(위탁제조) 업체 SMIC가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했다는 소식이 나왔고, 14나노급 양산에 성공했다는 발표도 있었죠. 애플이 국유 기업 창장메모리(YMTC)가 생산하는 낸드플래시를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미국은 곧바로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을 강화했죠.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의 대중 수출을 제한했고, 인공지능(AI) 칩 대중수출도 중단시켰습니다.

분위기로 보면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큰 성과라도 낸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올 들어 8월까지 3500개에 가까운 중국 반도체 기업이 줄폐업했고, 반도체 생산량도 작년 대비 많이 줄어드는 등 중국 반도체 산업은 내우외환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상하이 시정부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이 9월14일 발표한 상하이시 당위원회 기자회견 소식. 상하이 당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4나노급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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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업체가 7나노를?

SMIC가 생산했다는 7나노 칩에 대해 대만 반도체 업계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평가했더군요. 미국이 수출을 금지한 극자외선(EUV) 대신 그 아랫급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이용해 7나노 반도체를 한번 만들어본 정도라는 겁니다. 대만 국립 공업기술연구원 레이양 연구국장은 “DUV의 성능을 극한까지 이용하면 7나노 반도체를 만들 수 있지만, 이건 일반 자동차를 F1 포뮬러 경주차처럼 모는 격”이라면서 “수율(생산 제품 대비 양품 비율)이 낮아 원가 계산이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SMIC가 TSMC 출신 엔지니어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14나노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건 맞아요. 14나노는 반도체 미세 공정의 관문이라고 하죠. 하지만 아직 수율이 낮아 양산 체제를 갖추진 못했습니다.

SMIC의 작년 매출을 공정별로 보면 28나노급 비중이 15.1%, 40~45나노급이 15.0%, 55~65나노급이 29.2%에요. 14나노급은 아직 매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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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에 있는 반도체 기업 SMIC의 공장 내부.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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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드플래시는 품질은 떨어지지만 그나마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와 있다고 해요. 20나노급 기술을 사용하는 낸드플래시는 D램이나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그나마 추격이 용이하다고 합니다.

애플은 저가의 중국산 낸드플래시를 도입해 삼성전자 등 기존 업체와 가격 협상을 할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계산을 하는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미국 의회가 애플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하는 등 펄쩍 뛰고 있어 그대로 될지는 의문입니다.

◇반도체 기업 줄도산 행렬

사실 중국 반도체 업계는 요즘 초상집 분위기에요. 중국은 2014년부터 총 7000억 위안(약 139조원) 규모의 대규모 반도체기금을 조성해 반도체 독립을 밀어붙였습니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하지만 이렇게 뿌린 돈을 바탕으로 생겨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올 들어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 기술 확보 실패 등으로 인해 줄도산하고 있습니다. 8월말까지 부도로 인해 등록이 말소된 중국 반도체 기업은 3470개나 된다고 해요. 반도체 분야 등록 말소 기업 숫자는 2017년 461개에서 2018년 715개, 2019년 1294개, 2020년 1397개, 작년 3420개로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국가로부터 막대한 투자자금을 지원받아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미국의 제재와 자체 기술 부족 등으로 제품 개발에 실패해 하나 둘 문을 닫는 겁니다. 중국 내 한 반도체 설계업체 대표인 종레이는 최근 소셜미디어 글에서 “많은 반도체 분야 기업이 투자 자금은 말라가는데 이익을 낼 전망이 보이지 않아 문을 닫는다”고 했더군요.

조선일보

자료=치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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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탄 만들기보다 더 어렵다”

관영 과기일보 편집장을 지낸 류야둥 난카이대 신문미디어학원 원장은 지난 5월 중국 방송 대담에서 “반도체는 단순한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만들어지는 국제 협력의 산물”이라며 “반도체 만들기가 원자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힘을 집중해 큰 일을 이뤄내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거국체제는 큰 장점이 있지만 반도체 산업 발전에는 적합하지 않다”고도 했어요.

올해는 제로 코로나로 인해 제조업 가동률이 크게 낮아지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반도체 생산량도 급감했습니다. 지난 8월 중국 반도체 생산량은 작년 동기 대비 24.7%나 줄었어요. 1997년 이후 월 단위로는 최대 감소폭이라고 해요. 올해 1~7월 생산량도 작년 대비 8%나 줄었습니다.

조선일보

지난 5월 한 대담 방송에 출연한 류야동 난카이대 신문미디어학원 원장은 "반도체 제조는 국제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사회주의식 거국체제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웨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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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기금 책임자 줄줄이 조사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반도체 분야에서 진전이 없자 공산당 최고지도부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요. 반도체 기금을 운용해온 고위 경제 관료 6명이 올 7월부터 줄줄이 당 중앙 기율검사위의 조사를 받는 중입니다. 눈먼 돈을 배정받기 위해 고위 관료들에게 얼마나 많은 뒷돈을 줬겠습니까?

9월14일에는 시 주석이 당 중앙 회의에서 “반도체 등 관건이 되는 핵심 기술을 돌파하기 위해 정부와 시장, 사회가 거국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관영 매체 보도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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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6일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국가개발은행 관리기업 부총재 런카이를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2014년부터 중국 정부 반도체기금을 운용하는 화신투자관리유한공사의 부총재로 일해온 인물이다. /중앙기율검사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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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간 시 주석 주도로 진행된 중국의 반도체 산업 굴기 프로젝트를 흔히 ‘반도체 대약진운동’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아파트 짓고 도로 건설하듯 돈을 쏟아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공정별로 기초 기술을 쌓아야 하고, 인재도 풍부해야 하죠.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 서방국가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중국이 지금처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대결의 길을 걷는 한 중국 반도체 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에요.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낸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처럼 ‘반도체 대약진운동’도 참혹한 실패로 끝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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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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