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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속 다보이는 투표함 들고 찾아와 강제 투표..공포스런 러 합병 찬반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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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도네츠크=AP/뉴시스] 지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성향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에서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가 진행 중이다. 현지 주민들이 투명 투표함에 기표한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2022.09.24.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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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23일(현지시간) 강행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주민투표에서 투명한 투표함을 사용하고, 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이 집을 수색하며 투표를 강요하는 등 공정하지 못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밀투표 등 투표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러시아가 병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AFP, 타스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친러 성향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이 세워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러시아명 루간스크)주, 남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등 4개 지역에서 영토 편입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시작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공정하지 못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주민 증언 등에 따르면 기업 대표가 직원들에게 투표를 강요하거나, ‘투표를 거부하면 보안국에 통보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친러 당국은 투표 기간인 27일까지 투표하지 않은 주민들의 여행을 금지했다.

우크라이나 측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AP통신에 “총(위협) 아래서 투표가 진행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무장 군인들이 집안을 뒤져 (투표를 하지 않으려) 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 친러시아 성향이었던 주민 중 일부가 최근 반러로 돌아서 투표를 꺼리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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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러시아 귀속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앞둔 루한스크 도심에 22일 '러시아와 영원히'라는 문구가 적힌 투표 독려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2022.09.23


비밀투표의 원칙도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유권자들이 자기 집 부엌과 마당에서 기표를 하고, 접지도 않은 투표용지를 투명 플라스틱 투표함에 넣고 있다”고 전했다. 투표용지 윗부분에는 “(자신이 사는 지역이) 러시아 연방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이 쓰여져 있고, 용지 아래 나머지 부분이 ‘예’ ‘아니오’ 두 칸으로 크게 나눠져 있다. 선관위원이 투명 투표함을 메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투표용지를 받는 사진이 여러 러시아 매체에 실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크림 반도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주민 투표를 했다. 러시아는 당시 “81%의 투표율에 97%의 찬성률이 나왔다”며 크림반도 합병을 강행했다.

러시아가 투표를 염두에 두고 점령지 주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대가로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탈환한 동북부 하르키우주 발라클레아 주민들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러시아는 주민들에게 여권과 우크라이나 신분증을 요구해 복사한 뒤 스파게티 한 봉지와 쇠고기 통조림 몇 개를 지급했다”고 말했다. 점령 지역 주민들에게 생활필수품을 미끼로 개인정보를 빼내 선거 조작 등에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들 점령지 편입이 결정되면 “점령지 공격은 러시아 (영토) 공격으로 간주하겠다”며 핵무기 사용까지 시사하는 등 확전 의지를 밝히고 있어 전쟁은 국면 전환의 중대 기로에 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주민투표에 반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러시아 주민투표는 가짜”라며 “러시아에 추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망 (차단) 및 막대한 경제 비용을 안기는 제재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도 “러시아와 괴뢰 정부가 오늘 시작한 가짜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이나 정당성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도 우크라이나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을 강조하며 주민투표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2일 미국 뉴욕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각국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에서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가 벌어질 경우를 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주민투표에 관해 “러시아의 사이비 투표는 국제법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법을 위반한 범죄”라며 “반드시 전 세계가 규탄하고,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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