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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엔화-위안화 급락…“아시아 제 2의 외환위기 가능성”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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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3일(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를 찾아 “1년간 엔화 가치가 30엔 이상 떨어졌는데 이런 일은 과거 30년간 없었다”며 “과도한 변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뉴욕=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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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1997년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슈퍼 달러’ 시대에 아시아 경제의 양대 축인 중국과 일본의 화폐 가치가 급락하면서 해외 자본의 아시아 이탈을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는 미국과 중·일 금리 격차가 심해지며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도 전 세계 동시 다발적인 긴축적 통화정책에 따른 ‘슈퍼 달러’ 현상으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 “30년 만의 엔화 대폭락”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26일 위안화의 달러 대비 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0378 올린 7.0298 위안으로 고시했다. 이달 들어 7거래일 연속 위안화 가치를 절하해 고시했다. 15일 홍콩 역외 시장에서 장중 7위안을 돌파한 적 있지만 중국 당국이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7위안 이상으로 고시한 것은 2년 만에 처음이다. ‘1달러=7위안’는 중국에서 심리전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고 1달러당 7위안을 돌파하는 것을 ‘포치(破七)’라고 부른다.

이날 런민은행은 금융기관이 외환 선물환 거래를 할 때 런민은행에 1년간 예치해야 하는 외환위험준비금 비율을 28일부터 0%에서 20%로 올린다고 밝혔다. 런민은행은 “외환시장 기대치를 안정시키지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자 위안화 방어를 위해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엔화는 최근 달러당 145엔을 돌파해 일본 금융 당국이 아시아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24년 만에 개입에 나서는 등 최악의 화폐가치 하락을 겪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2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를 찾아 “1년간 엔화 가치가 30엔 이상 떨어졌는데 이런 일은 과거 30년간 없었다”며 “과도한 변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금융당국 개입으로 26일 일본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엔화 환율은 143엔 수준으로 상승 출발했다. 하지만 시장은 일본 금융당국의 개입이 엔화 가치 하락 속도를 늦추더라도 추세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말 금리를 4.4%로 내다보는 등 ‘슈퍼 매파적’ 행보를 보이는 반면 일본 중앙은행은 최근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는 등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해 미일 금리 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비슈누 바라탄 미즈호 은행 수석 경제 전략 담당은 불름버그에 “아시아 시장을 대표하는 엔화와 위안화의 약화는 아시아 전체 통화 시장의 불안정성을 야기한다”며 “우리(아시아)는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스트레스를 향해 가고 있다. 그 다음 단계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수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명한 신흥시장 전문가인 짐 오닐 채텀하우스 의장은 엔화가 달러당 150엔을 돌파하면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해 왔다. 오닐 의장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골드만삭스 통화전략 담당이었다. 그는 “아시아 경제 대국인 중국과 일본 통화의 폭락은 해외 자금에 겁을 줘 아시아 전체에서 자금을 빼돌리는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며 “이 경우 아시아의 본격적인 외환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국 증시서 20조 원 유출

이미 신흥시장 자본 유출은 현실화 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한국 증시에서 137억 달러(20조 원), 인도에서 200억 달러(29조 원), 대만에서 440억 달러(63조 원)가 빠져나갔다.

중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주요 국가들의 가장 큰 무역국이라는 점도 아시아 경제에 대한 시장 신뢰를 잃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트랑 투이 르 맥쿼리캐피털 전략가는 “무역수지 적자를 겪고 있는 한국의 원화, 필리핀 페소, 태국 바트화 등이 (시장 변동에) 가장 취약한 통화”라고 밝혔다.

이미 개발도상국 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대출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소한 5개국이 채무불이행으로 IMF 긴급 자금을 신청하는 등 8월 말 현재 IMF의 지급 대출 규모는 44개의 개별 프로그램에서 1400억 달러(200조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 세계는 역환율 전쟁

중국과 일본이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영국, 캐나다, 스웨덴 등 나머지 세계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통화 가치를 일부러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환율전쟁이 벌어졌지만 지금은 물가를 잡고 나아가 자본 유출을 막으려는 ‘역(逆)환율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지난주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0.50%포인트(빅스텝) 인상한 영국에선 ‘슈퍼 달러’에 자국의 감세정책 여파까지 겹쳐 파운드화가 3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11월 1.25%포인트 인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스위스 중앙은행(0.75포인트 인상), 노르웨이(0.5%포인트 인상), 스웨덴(1%포인트 인상), 덴마크(0.75%포인트 인상), 캐나다(0.75%포인트 인상) 등 세계 각국이 잇따라 빅스텝 이상 강력한 긴축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JP모건은 10월에도 유럽연합(EU)을 비록해 한국, 뉴질랜드, 태국 등 16개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지만 아무도 세계경제 수요에 미칠 집단적 효과는 따지지 않고 있다”며 “동시다발적 금리인상이더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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