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법이 있어도 처벌 안 하니 스토킹 피해 지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발의한 정춘숙 의원 인터뷰


[주간경향] 지난해 10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이 처음 시행됐다. 1999년 관련 법 제정안을 발의한 이후 22년 만이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스토킹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은 현행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분리되지 않았고,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했다. ‘스토킹 처벌법’에 적용된 ‘반의사불벌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2차 가해로 이어졌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범죄를 말한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춘숙 의원은 ‘반의사불벌죄’ 등 정부안을 바탕으로 제정된 현행 ‘스토킹 처벌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스토킹 처벌법’이 범죄 예방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의 조속한 제정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정춘숙 의원을 만나 현행 ‘스토킹 처벌법’의 문제점을 들었다.

경향신문

정춘숙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주간경향과 만나 신당역 사건 관련 스토킹 처벌법 보완점 및 스토킹 피해자 지원 보호법 입법 지연 문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의 구조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법원, 경찰, 서울교통공사 모두 스토킹이 심각한 범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지난해 법원은 피의자 전주환의 불법촬영 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나 두려움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경찰은 피해자가 스토킹으로 2차 고소를 했을 때는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서울교통공사는 스토킹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가해자가 직위해제됐다는 것은 회사도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가해자가 공사 내부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을 차단하지는 않았다. 모두 스토킹에 대한 문제의식이 안일했기 때문에 이를 가볍게 다뤘다.”

-법원의 영장 기각 이유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였다.

“스토킹 범죄가 살인이나 강력범죄로 이어진 사례가 많았음에도 법원은 이번에도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관행에 따라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무죄추정의 원칙, 인권보호를 이유로 구속영장 발부를 잘 안 하려고 한다.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 범죄처럼 강력범죄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범죄는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를 고려해야 한다. 구속영장 발부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구속됐다면 적어도 피해자가 죽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3년 동안이나 스토킹을 했고,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법원은 이를 너무 가볍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입법의 문제도 거론된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스토킹 처벌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의 가장 큰 문제는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이다.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도 반의사불벌죄여서 문제가 되고 있다. 강간죄·강제추행죄 등 형법상 성범죄도 반의사불벌죄였는데, 가해자의 합의 강요 등 2차 가해 문제가 심각해 2013년 폐지됐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20여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합의를 종용했다. 반의사불벌죄는 국가의 형벌권이 피해자 개인의 선택에 좌우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피해자에게 처벌의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 가해자는 피해자를 압박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는데, 왜 유독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에 반의사불벌죄를 도입하는지 모르겠다. 여성단체에서 반의사불벌죄에 대해 그렇게 오랜 기간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왔는데도 ‘스토킹 처벌법’에 이걸 또 넣었다.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의 선택권을 높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대체 과거로부터 배우는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건 이후, 법무부는 현행 ‘스토킹 처벌법’에서 반의사불벌죄를 신속히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스토킹 처벌법’ 국회 통과를 앞둔 지난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법무부, 경찰청 등 정부가 반의사불벌죄를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의사불벌죄는 처음부터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법무부는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에 대해 인식이 일천하거나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가볍게 여기고 외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스토킹 가해자는 피해자의 직장, 행동반경, 가족, 지인 등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피해자가 합의에 대한 압박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부모에게 해를 끼치겠다는 식의 협박도 한다. 법무부가 이제 와서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게 화가 난다. 국회에서 법을 논의할 당시에도 반의사불벌죄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법무부는 듣지 않았다.”

-‘스토킹 처벌법’의 응급조치,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 등 피해자 보호조치가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피해자 보호조치 중 가장 강력한 조치가 가해자를 유치장·구치소에 유치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다. 지난 9월 1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과 법무부로부터 받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 신청 결과’ 자료에 따르면, 법원은 잠정조치 4호 청구의 55%를 기각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데 잠정조치 4호만큼 확실한 게 없다. 피해자 보호조치 중 가장 강력한 조치인데 절반 이상이 기각된다는 건 상당히 큰 문제다. 신당역 사건 이후 경찰은 피해자 보호조치와 관련해 세가지 법 개정 사항을 제안했다. 가해자가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할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대신 형사처벌을 하고, 가해자를 선(先) 유치하고 사후 판단을 받도록 하는 긴급잠정조치를 신설하며, 경찰-검찰-법원 3단계로 돼 있는 보호조치 결정구조를 경찰-법원 2단계로 간소화하는 내용이다. 사실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관련해 매우 유사한 형태의 문제점과 대안이 이미 예전부터 제시됐다. 1997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정폭력방지법)’을 처음 도입했을 때, 반의사불벌죄 등 현재 ‘스토킹 처벌법’의 문제점들이 ‘가정폭력방지법’에도 대부분 담겨 있었다. 여성단체들이 20년 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싸우면서 그나마 지금의 모습으로 개정됐다. ‘가정폭력방지법’과 ‘스토킹 처벌법’은 제정 배경과 법의 성격이 비슷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그 유형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관련 법을 계속해서 개정해 왔고, 그 경향이라는 게 있는데 과거로부터 하나도 배우지 않고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법을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됐는데도 스토킹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

“범죄를 예방하려면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법이 만들어진 대로 집행을 하고 그에 따라 처벌이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사회에 사인을 줘야 한다.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350차례나 스토킹을 했고, 피해자가 신고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경찰, 검찰, 법원이 한 일을 봐라. 현실의 법이 이렇다면 가해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스토킹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겠나. 처음부터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강력한 조치를 시행했다면 감히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해도 절반 이상이 기각되는 현실에서는 가해자들이 이 법을 우습게 알 수밖에 없다.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처음 시행됐을 때도 초반 6개월 정도는 가해자들이 바짝 긴장하더라. 피해자들도 상담 신청을 많이 하는 등 사회 전체적으로 가정폭력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분위기가 있었다. 법이 허점이 많고 집행마저 제대로 안 되니 2년쯤 지나자 법을 우습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정의나 행태 유형 등을 확대하고 피해자 보호 명령제도를 도입하는 등 개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제대로 만든 개정안을 내면 입법 취지에 따라 법을 집행해야 한다. 법을 운용하는 법원, 검찰, 경찰 등 사법 종사자들의 의식과 태도의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난 4월 발의한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 지난 9월 1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상정됐다.

“‘스토킹 처벌법’이 지난해 10월에 시행됐고, 그후 준비 기간을 거쳐 올 4월에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발의했다. 원 구성이 늦어지면서 이제야 진행이 되고 있는데 혹시 보호법이라도 빨리 처리했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에는 스토킹 예방과 피해자 등을 보호·지원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 책무를 규정하고 스토킹 신고체계 구축, 조사·연구, 법률구조·주거 지원 등 지원시스템 마련, 신변노출 방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기관과 시스템이 마련되면 피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좀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스토킹 처벌법’은 법무부가 관할하고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은 여성가족부가 관할한다.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일은 법무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피해자 보호법까지 법무부가 하겠다고 나섰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사람들이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들과 같은 생각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는 분명히 있어야 하고 아직도 할 일이 너무나 많은 부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추모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