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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0대그룹 만난 이창양 "대기업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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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기 요금인상에 앞서 양해 구해

물가급등 우려에 전체 인상 어려워

산업전기료 OECD 34개국 중 23위

대기업이 그나마 충격 흡수 여력

[이데일리 김형욱 강신우 기자] 정부가 4분기 산업용 전기요금,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대기업 요금 추가인상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나섰다. 전 세계적 에너지 위기로 전례 없는 적자 수렁에 빠진 한국전력공사(015760)를 구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물가 부담 때문에 전체 요금 추가 인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고통 분담에 나선 모양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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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한 10대 그룹 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전력) 대용량 사업자를 중심으로 우선적인 요금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사진=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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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양 산업장관, 10대 그룹 사장단 만나 “우선 요금조정 불가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에너지 위기와 관련한 1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를 열어 현 에너지 위기 상황을 설명하고 “(전력) 대용량 사업자를 중심으로 우선적인 요금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부와 한전의 4분기 요금인상 결정에 앞서 요금부담이 커지는 대상에 고통 분담을 요청하며 사전 양해를 구한 모양새다. 4분기 요금 인상을 위해선 이번 주 중 최종 결론이 나와야 한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이날 간담회에 앞선 지난 23일에도 반도체, 철강 등 업종별 협회 간담회를 통해 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박 차관은 26일 오전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협의회 상근부회장들과 만나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용량 사업자에 대한 요금 차등 인상 추진은 현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 우려를 현실적으로 절충한 것으로 풀이된다. 요금 추가인상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물가 인상 우려 때문에 전체 요금을 다 올리기도 어렵다는 판단이다. 원유·가스·석탄 등 발전연료 국제시세는 연초대비 5배 전후까지 급등한 상태다. 한전의 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 상반기 14조3000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 연간 적자도 3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한전과 정부는 올 4·7·10월에 걸쳐 1킬로와트시(㎾h)당 11.9원(인상률 약 10%)을 올리고 3분기에 연료비와 연동해 5원/㎾h을 추가로 올렸으나 두 배 이상 오른 원가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영국과 일본은 올 상반기에만 전기요금을 각각 68%, 36% 올렸다.

물가 상승 부담을 안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현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한전 정관까지 바꿔가며 추가 인상을 하는 데는 큰 부담이 뒤따르는 상황이다. 연료비 연동제는 연 최대 요금조정 폭을 ±5원/㎾h으로 한정하고 있어 정관 변경 없인 추가 인상이 어렵다. 한전이 현 적자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현재의 1.5배 수준인 50원/㎾h을 더 올려야 하는데 물가 우려 속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 산업용 요금 OECD 하위권…대기업이 그나마 충격 흡수 여력

전기요금 인상은 안 그래도 경기침체 우려 앞에 놓인 산업계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 삼성전자(005930)나 현대제철(004020) 등 전력 다소비 기업은 매년 전기료로만 1조원 전후를 내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어차피 올릴 수밖에 없다면 대기업 맞춤형 인상이 가격 상승 충격을 그나마 흡수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전 적자 감소 효과도 크다. 전체 인상은 물가 상승 부담이 크고, 산업용 요금만 올려도 전력 다소비 영세업종인 뿌리기업 등은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이 아직 전 세계적으로 아직 낮은 편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 2020년 10월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1메가와트시(㎿h)당 94.8달러로 OECD 34개국 중 23위다. 전체 평균(108.9달러)보다도 13% 낮다. 독일(173.4달러), 일본(161.9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올 들어 이들 주요국 (산업용) 전기요금이 폭발적으로 올랐다는 걸 고려하면 현 시점에서의 격차는 더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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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 학장은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은 상대적으로 경영 여건이 괜찮은 만큼 이들에 대한 맞춤형 가격 인상은 고육지책이면서도 현실적 방안”이라며 “대상 기업에는 부담이겠지만 외국에선 ‘횡제세’도 거둬가는 상황에서의 고통분담인 만큼 현 상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전은 현재 산업용 전기를 원가의 약 60%(원가회수율)에 공급하고 있다. 한전이 이들의 에너지값 급등 부담을 대신 떠안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수요 효율화 노력이 커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대기업의 솔선수범과 수요 효율화 노력은 다시 산업계는 물론 일반 가정을 아우르는 사회 전반의 에너지 가격기능 회복과 고효율 전환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전력 다소비 업종에 대한 차등 가격 인상은 어디까지나 현 에너지 위기에 대한 임시방편일 뿐 장기화해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유승훈 학장은 “현 상황에선 고통 분담이 불가피하지만 장기화 땐 자칫 국가 기간산업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선진국도 기간산업의 대외 경쟁력 때문에 같은 전력 다소비 업종이라도 수출을 많이 하는 곳의 전기요금은 깎아주는 만큼 어디까지나 일시적 방편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똑같은 전기인데 많이 쓴다고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게 합리적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시장주의 원칙 아래 요금이 원가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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