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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反이민·反난민·反EU”… 이탈리아, 80년만에 극우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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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연합 총선 압승… 긴장하는 유럽연합

조선일보

“감사합니다, 이탈리아” - 26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이끄는 우파연합이 승리하자 조르자 멜로니 FdI 대표가 ‘감사합니다 이탈리아’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멜로니를 앞세운 극우 정권의 출현이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연합 내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멜로니 대표는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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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이끄는 우파연합(Centrodestra)이 25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전역에서 치른 조기 총선에서 하원과 상원 모두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이에 따라 조르자 멜로니(45) FdI 대표가 이탈리아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이자, 2차 대전 이후 약 80년 만에 집권하는 극우 성향 총리로 등극할 전망이다. 독일·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이탈리아에서 극우가 이끄는 우파 정권의 등장으로 EU는 물론 세계 정치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이탈리아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개표가 약 99% 진행된 26일 오후 12시 31분 현재 FdI와 동맹(Lega·극우 성향), 전진이탈리아(FI·중도우파)가 중심이 된 우파연합은 득표율 43.8%로 하원에서 240석, 상원에서 120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탈리아 하원과 상원 의원 수는 각각 400명과 200명으로, 과반을 넘는 것이다. 중도좌파연합(Centrosinistra)은 26.14%의 득표율로 하원에서 80여 석, 상원에서 40석 내외를 확보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최종 투표율은 64%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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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뉴스26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이끄는 우파연합이 승리하자 조르자 멜로니 FdI 대표가 ‘감사합니다 이탈리아’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멜로니를 앞세운 극우 정권의 출현이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연합 내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멜로니 대표는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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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별로는 FdI가 출구조사 예측(22~26%)을 넘는 26.02%의 득표율로 원내 제1당이 확정됐다. 민주당(PD)이 19.08%, 오성운동(M5S·반체제 포퓰리즘)이 15.40%로 그 뒤를 이었다. 이탈리아 ANSA통신은 “향후 정치 일정에서 이변이 없는 한 멜로니가 총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멜로니 대표는 26일 새벽 “수백만 이탈리아인의 지지를 배신하지 않겠다”며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 이탈리아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 역사에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FdI는 2018년 총선 득표율이 4%에 불과했다. 일개 군소 정당이 4년 만에 원내 제1당이 되고, 총리까지 배출하는 돌풍을 일으킨 셈이다. 일간 코리엘레델라세라는 “강한 여성 리더의 이미지를 내세우면서도, 스스로 한 가정의 ‘어머니’임을 강조하는 멜로니의 개인적 매력이 당의 급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FdI가 최근 공식 당명을 “조르자 멜로니와 함께하는 이탈리아형제들”이라고 바꿨을 정도다.

멜로니는 15세에 과거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결성한 파시스트 성향 정치 단체 이탈리아사회운동(MSI)에 가입, 일찌감치 극우 운동에 몸담았다. 2006년엔 전국보수연합(AN) 소속으로 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2년 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내각의 청년부 장관이 됐다. 당시 31세로 이탈리아 역대 최연소 장관이었다. 2012년 FdI 창당을 주도했고, 2014년 당수가 돼 9년째 당을 이끌어 왔다.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때 유일하게 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으로 남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이후 물가가 급등하고 난민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며 민심이 악화하자 FdI가 반사 이득을 봤다. 피에로 이그나치 볼로냐대 교수(정치학)는 “정권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에겐 선택지가 멜로니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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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니와 FdI는 반(反)이민·난민, 이탈리아 민족주의, 남녀 성(性) 역할이 분명한 전통적 가족관, ‘기독교 문명’의 가치를 내세운다. 또 EU에도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등 유럽 극우의 전형적 이념 지형에 속해 있다. 경제 정책에서는 감세와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다. 유럽 주류 언론은 이 때문에 멜로니를 앞세운 극우 성향 정권의 등장이 이탈리아는 물론 EU에도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예상해 왔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탈리아가 독일·프랑스와 손발을 맞춰 EU를 주도하던 구도가 허물어지고, 극우 정권이 들어선 헝가리·폴란드·체코 등과 손잡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독일 주간 슈테른은 그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곧바로 ‘우향우’를 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나랏빚이 가장 많은 나라다. 정부 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50%에 이른다. 정책 전문 분석 기관인 유럽개혁센터(CER)는 “멜로니는 당분간 EU와 공조하면서 이탈리아 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크 라자르 파리정치대학 교수도 “EU가 2026년까지 제공하는 1915억유로(약 265조원) 규모의 신종 코로나 회복 기금을 받으려면 EU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 자금은 이탈리아 경제 인프라에 투자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쓰일 예정이다.

멜로니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친(親)유럽 행보를 이어왔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제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EU 및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국) 탈퇴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같은 집권 세력 내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FI 당수) 등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살비니 대표는 기업과 가정에 정부 예산으로 대규모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베를루스코니 당수는 뚜렷한 친러·친푸틴 성향을 보이고 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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