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을 막는 해법으로 이민 수용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은 이미 이주민 비율이 5%에 가까운 다인종 국가로 가고 있다. 지난 18일 구미 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캄보디아·스리랑카·중국·베트남·태국 등 5개 나라 출신 외국인 노동자 부부 5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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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현재 한국이 직면한 중대한 위기는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급감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한 2021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발생했고 인구증가율은 -0.2%로 인구 감소가 본격화됐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총 인구가 42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고령화로 인해 전체 인구 중 노인(65세 이상) 비율은 1970년 3.1%에서 2022년 17.5%로 증가했고, 2050년에는 40.1%까지 증가할 것이다. 인구재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고, 세수는 줄어들고, 노인부양비는 증가해 국민연금이 2060년에는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청년층이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집중하면서 비수도권의 모든 ‘도’ 지역은 ‘소멸주의’ 단계에 들어갔고, 전국 228개 시군구의 절반이 소멸 위험지역이 됐다. 궁극적으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고 사회혁신 능력을 저하시켜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쪼그라지는’ 대한민국이 예정된 미래다.
일자리 뺏기고 범죄 우려, 이민에 두려움
이민이 인구 감소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불가피한 해법이지만 이민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문제로 인해 한국인은 이민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민자가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는지 하는 경제적 위협, 범죄율을 높인다든지 하는 사회적 위협, 그리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훼손한다는지 하는 문화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국인은 이민자를 사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한다.
이민과 다문화사회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이민과 다문화주의를 수용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으로 양분돼 있다. 단일민족국가로 남을 것인지, 이민국가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국론이 분열돼 정부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익숙하고 안전하지만 결국은 쇠약하는 길로 가는 ‘예정된 미래’와 생소하고 위험하지만 기회의 땅으로 가는 ‘미지의 미래’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과거 한국은 선진국의 발전모델을 모방하는 전략을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제는 따라갈 선진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은 경제, 과학기술, 의료, 그리고 한류로 불리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이민정책과 같은 사회 분야에서도 혁신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선도적인 이민정책은 아시아의 많은 국가에 유용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이민정책은 국경관리, 외국인력 유치와 활용, 이민자 사회통합과 같은 중요한 과제들을 포함한다.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해외 인적 자원을 유치하고 활용하는 실용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유학생, 전문기술자, 사업가 같은 인재가 한국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선진국으로서의 국격을 지키기 위해 이민자의 인권 보호와 문화 다양성 존중과 같은 윤리적인 목표를 실용적인 목표와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외국인과 이민자가 살기 편하고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내국민도 행복한 선진 한국을 만드는 길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민정책의 비전은 ‘국민과 이민자가 함께 만드는 더 큰 대한민국’, 이민정책의 목표는 ‘선진국으로서 미래 경쟁력과 국격을 높이는 이민정책’으로 삼으면 좋겠다.
우리에 앞서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인구 감소, 고령화를 경험한 서구 선진국들도 이민을 통해 신규 노동력을 확보하고, 출산율을 높이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했다. 선진국의 이민정책은 공통으로 고학력, 전문직, 기술직 이민자와 유학생 등 우수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단기체류에서 영주 및 국적취득까지 체류자격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지방정부가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추진하고 이민자의 거주국 사회통합을 지원한다.
모든 선진국이 이민정책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 반이민자 정서 등으로 인해 서구 국가들은 이민자와 선주민 간에 화합과 공생 대신 분열과 고립으로 신음하고 있다.
인구·경제정책 연계 ‘더 큰 대한민국’을
이민으로 인한 이득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해 이민에 대한 내국인의 우려를 줄이는 방법이 ‘질서 있는 이민’이다. 질서 있는 이민이란 정부가 이민자의 규모와 자격 요건, 그리고 거주국 내 사회구성원 자격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내국인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효과적으로 이민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을 때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고 이민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민정책을 인구정책, 지역균형발전정책, 경제정책, 문화다양성정책과 긴밀하게 연계하고 통합해 궁극적으로 지속가능 국가발전정책의 중요한 고리로 그 위상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러 정부 부처로 흩어진 이민행정을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전담부서, 예를 들어 이민청과 같은 조직을 설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의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이민정책에 대해 국민과 소통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대민관계(public relations)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 껴있고, 더욱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인구가 줄어드는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떠한 길을 가야 할까? 세계의 이민과 디아스포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늘 고민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이민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역사에서 네덜란드, 영국, 독일, 미국과 같은 국가는 종교적 관용성, 개방성, 실용주의를 실천해서 해외의 인재를 끌어들이고 이들을 혁신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했다. 반대로 종교적 배타성, 폐쇄성, 원리주의를 고집한 스페인과 프랑스는 유대인, 무어인, 위그노 신교도와 같은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기업가)를 추방하여 쇠망의 길로 들어섰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를 환대해 이들과 함께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윤인진 한국이민학회장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1991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사회학 박사를 마치고, 92~95년에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라라 캠퍼스에서 조교수를 했다. 95년부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1월부터 한국이민학회 8대 회장을 맡고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동북아시아의 국제이주와 다문화주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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