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선 달러 환율이 올 연말엔 1500원 선을 넘어 1550원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1997년 외환 위기는 환율 1600원대에서 도화선이 당겨졌다. 환율이 환란 직전 수준까지 갈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다. 추경호 경제 부총리는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했다. 1997년 당시에 비해 기업 재무 구조가 개선됐고, 외환 보유액이 4300억달러로 불었으며, 경제 신인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1년 미만 단기 외채가 10년 만에 외환 보유액의 40%를 넘겨 불안감을 주고 있다. 환율 방어에 달러 실탄을 쏟아부으면서 외환 보유액이 300억달러 이상 줄었고,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다.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 이후 세계는 ‘역(逆)환율 전쟁’에 들어갔다. 자국 통화를 절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절상시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총력전이다. 지난주 미국이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 다음 날 하루 동안 영국·스위스·대만·인도네시아 등 13국이 금리 인상에 나섰다. 환투기 세력은 ‘약한 고리’를 노린다. 1997년 한국이 외환 위기에 빠진 것도 취약한 외채 구조에다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면서 먹잇감이 됐기 때문이다.
심리적 불안감이 가장 문제다. 세계 대부분 통화가 약세이나 원화의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이미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 비율은 30%로 내려갔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커질수록 외국인 자금의 이탈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관리 능력이 의심받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시장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야 한다.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던져야 한다.
현재 정부는 다양한 달러 공급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한·미 통화 스와프가 근본 대책이다. 서둘러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청와대 벙커 회의’처럼 대통령이 직접 지휘봉을 쥐는 범정부 차원의 상시 대응 체제도 필요하다. 적어도 미국발 충격이 계속될 내년 초까지는 환율과 금융시장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비상 체제에 들어가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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